화창한 휴일이었다. 낮기온이 30도에 육박할거라는 날씨 예보도 들린다. 요 며칠 예년에 비해 쌀쌀한 기온이 계속됐는데, 날씨는 이제 점점 종잡을 수 없는 무엇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코 기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현상일 것이라 속으로 생각하며 최대한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참으로 오랜만에 거리에서 사람을 만났다. 손목에 연두빛 나풀거리는 리본을 매고 9명이 한 개의 조가 되어 방역 거리를 유지한채 20개 가까운 행렬이 청계천에서부터 동대문 DDP 까지 이어졌다. 그곳에서 일요일과 월요일 양일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었다.
P4G, 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Global goals 2030) 12개 대륙별 국가와 기업이 한 자리에 모여 절체절명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열리는 일종의 기후위기 대응 공공-민간 파트너십 국제회의다.2018년 덴마크가 첫 단추를 끼운데 이어 올해 한국이 두번째 개최국이다. 파트너 국가는 초기 8개국에서 현재 이른바 중견국가들 (남아공, 네덜란드, 대한민국, 덴마크, 멕시코, 방글라데시, 베트남,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케냐, 칠레, 콜롬비아)까지 확대되었고, 그 글로벌 기후위기대응 논의에 국제기구와 민간기업, 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을 담보하는 것이 조직적 특징이다.
한국에서도 시민사회 파트너십을 위해 한국민간위원회라는 외연을 갖추었다. 그러나 당장 정부의 공허한 녹색담론에 들러리 세우는 한국민간위원회 참여를 거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한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국회에서 결의안까지 통과시켰지만 그 선언이 무색하게 여전히 새로운 석탄발전소 건설을 강행하는 것은 물론 베트남, 인도네시아와 같은 이웃 국가들에 석탄화력발전에 투자하고 있다. 가덕도와 제주도 등지에 신공항 건설과 같은 엄청나게 탄소를 내뿜는 토건사업도 여전하다. 이것이 P4G를 개최하여 2050년까지 탄소배출제로를 추구하며 글로벌 기후위기를 대응하겠다는 한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 P4G를 개최해서 국가와 기업이 이야기 하는 ‘녹색’의 실체는 무엇인지, 또한 녹색과 만나는 ‘녹색성장’은 누구의 성장을 의미하는지, 마치 그런 성장과 기후위기 문제 해결이 양립하는 듯 앞장서서 호도하는 정부와 기업의 행보에 제동을 걸어야 했다.
그리하여 P4G가 열리는 현장의 초록색 깃발 아래 이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요구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절반 이상 감축하라. 국내외 신규 석탄발전건설과 투자를 즉각 중단하라. 가덕도 신공항 등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토건사업을 백지화하라. 노동자와 농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정의로운 전환 계획을 신속히 수립하라. 기업의 책임을 묻고, 지구 위 생명들의 권리를 보장하라.”
P4G 홍보영상 속 대통령이 말했다. “정부와 국가 간 협력도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작은 실천”이라고. 마치 기후위기가 지구를 생각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인의 행동으로 생겨난 것 마냥 기후위기의 실체를 가리는 무책임한 발언을 P4G 개최국 행정부 수장이 뱉은 것이다. 개인의 실천으로 해결될 수 있는 위기였다면 애초에 P4G와 같은 국제회의가 개최될 이유도 없었을 터.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하고 정확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지금이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최우선 과제여야 한다.
누가 그 많은 화석연료를 태웠나? 그로 인해 누가 이익을 보았나? 탄소배출에 의존해온 사회 시스템이 말하는 성장은 어떻게 사회 불평등을 만들어냈나?와 같이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고, 이 위기를 넘기 위해 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야한다. 지금과 같은 불평등한 시스템 유지해서는 기후정의를 실현할 수 없다. 정부와 기업은 직시해야 한다. 모두가 ‘기후정의’를 외치는 지금, 그 기후정의를 실현해나갈 주체는 기업도 정부도 아닌 바로 이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불평등을 깨부수자 외치고 변화를 꾀해온 그러나 동시에 그 불평등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그날 DDP에 모인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사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탄소중립도 기후정의도 공허한 말잔치일 뿐이다. 다시금 그날의 구호를 외쳐본다. P4G, 가짜 녹색을 멈춰라. 우리가 진짜 녹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