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022년 10월 29일, 그저 사랑하는 이들과 할로윈을 즐기고자 이태원에 모였던 평범한 삶들에 재난이 덮쳤다. 많은 이들이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그 고통을 속수무책으로 목격했으며, 끝내 159명은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시민의 안전에 막중한 책임이 있음에도 그 날 그 자리에 부재했던 국가는 책임 회피에는 참 부지런히도 움직였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진실을 가리며, 고인의 죽음을 무시하고 모욕했다. 9년 전 세월호 참사가 자연스레 겹쳐 보인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안전한 국가가 아니며, 안전한 국가가 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자격 없는 국가’임을 새삼 실감한다.
지난 4월 5일, 서울시청에서 <159개의 우주가 사라진 159번의 밤과 낮 - 10.29 이태원 참사 159일 시민추모대회>가 열렸다. 159명의 삶이 사라진 지 159일째 되는 날이자, 유가족들의 목소리로 직접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10일 간의 진실버스 전국 순회가 마무리되는 날이었다. 갑자기 찾아온 비바람에 몸이 떨렸지만, 159명의 삶을 변함없이 기억하는 다른 이들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159개의 별들이 맺어준 새로운 가족과 함께 가는 길
사랑하는 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10월 29일에 멈춰있다던 유족들의 시간은 아주 조금이나마 흘렀을까. 진실버스를 탔던 열흘이 유족들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지 궁금하고, 또 앞서 걱정이 됐다. 참사가 일어났던 이태원과 시민분향소가 있는 서울광장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들에게 참사를 말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 심정을 가늠할 수 없어 움츠러들었던 마음에 고 최유진 씨의 가족, 최정준 씨의 말이 깊이 남았다. 사람들은 유가족이 유가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에 그저 슬프고 무겁고 어두울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도 불과 159일 전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그리고 진실버스를 탔던 지난 열흘 동안 또 다른 유가족과 활동가, 시민들과 버스에서 숙소에서 거리에서 함께 웃었다고. 그렇게 아이들이 맺어준 ‘우리 가족’들을 확인했다고. 다른 유족들도 진실버스의 시간을 비슷한 결로 말해줬다. 연결, 연대, 믿음. 그래서 “더 이상 외롭지 않다”고 말이다.
무대 위에서 객석의 사람들을 바라보던 유족의 얼굴이 어딘가 단단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족들이 말하는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게끔 연대하는 게 여기 모인 우리의 과제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함께 울고, 분노하고, 또 웃기도 하면서 말이다.
길 잃은 별들이 진실로 향하는 길‘들’
무대 옆에는 커다란 별 조형물이 있었다. ‘재난’은 ‘별’이 길을 잃어 생긴 거라는 옛이야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리고 할로윈 축제의 호박 가면을 의미하는 주황색, 애도와 독특함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보라색을 사용했다. 길 잃은 별들이 내려는 길을 잘 따라가기 위해 별들이 왜 길을 잃게 되었는지를 계속 곱씹게 된다. 세월호 참사를 겪었던 2014년 이후 이태원 참사를 겪은 2022년, 조금은 다른 질문을 갖게 된 것 같다.
또래의 죽음을 목격하며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국가에 분노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가족과 어른들의 말에 둘러싸여 나/우리의 생명과 안전은 우리가 아닌 누군가, 이를테면 국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때는 대통령이 물러나면 안전한 국가가 완성될 거라고 조금은 믿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물러났음에도 참사는 또 발생했다. 그래서인지 ‘퇴진이 추모다’ 구호를 마주했을 땐 마음이 복잡했다. 퇴진으로 안전한 국가는 오지 않았고, 사실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라면, 그건 그대로 문제인 게 아닐까 싶다. 결국 우리의 생명이 고작 몇몇 개인이나 정당의 손에 달려있다는 말일 테니까. 지금에서야 당시의 내가 길 잃은 별들이 내는 길을 제대로 따라갔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길 잃은 별들이 향하는 진실은 하나의 갈래이기만 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안전을 위한 국가 시스템이란 무엇이며, 그 시스템은 어떻게 가능한가. 안전의 부재와 밀림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왜 발생하는가. 밤에 혼자서 일을 하다 스토킹 가해자에게 죽임을 당한 신당역의 여성 노동자, 기후위기가 몰고 온 폭우참사에 희생된 이들이 떠오른다.
우리의 안전은 외부의 규율과 통제만으로 완성될 수 있는가. 안전에 있어 책임과 권리를 분리할 수 있는가. 가라앉는 배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청소년과 승객들, 노동 현장이 위험하다는 판단 하에 작업 중지를 했다가 사측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 노동자가 떠오른다.
지금 대한민국에 시민의 안전을 위한 국가 시스템이 부재하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그리고 그 사이 벌어졌던 수많은 참사들이 그 맥락 위에 있음도 분명하다.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맥락에서의 책임자 처벌 역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시민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 못지않게 우리가 우리를 직접 지킬 ‘권리’에 대한 이야기도 더 많이 나눠보고 싶다. 안전의 부재를 감지하고 상황을 통제하는 힘, 안전이 부재한 곳에 안전을 직접 채울 수 있는 힘. 안전한 국가의 새로운 시스템이 그 위에서 세워졌으면 좋겠다.
길 잃은 별들과 함께 헤매며 만들어나갈 길
많은 이들이 유족들의 곁에서 길 잃은 별들이 내는 길을 촘촘히 채우며 따라가고 있다. 그렇게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를 골자로 하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의 국민동의청원이 시작한 지 열흘 만에 5만 명을 달성했다.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제대로 지우기 위한 첫걸음을 뗐다.
여전히 여정은 순조롭지만은 않다. 특별법 발의안에 이름을 올린 183명의 국회의원 중 여당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되려 유족들의 1인 시위를 외면하고, 특별법이 ‘정쟁 목적의 법안’, ‘과잉 입법’이라며 비난했다. 유족들은 물러서지 않고 얼마 전 5월 8일부터 여당 당사 앞에서 <10.29 이태원참사 200일, 200시간 집중추모행동 주간>을 시작했다. 집회물품을 뺏으려는 경찰들로 인해 유족들과 집회 참가자들이 다쳤다. 그럼에도 159개의 별들이 내는 길을 놓치지 않기 위해 유족들은, 그리고 연대하는 우리는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이 길을 한참 헤매더라도, 그 끝에는 진정한 애도와 안전한 국가가 있기를, 또 우리의 연대가 그 길의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00일, 그리고 분향소를 차린 지 100일을 맞아 “거리에서 전하는, 유가족의 두 번째 100일 이야기”를 듣는 <10.29 이태원 참사 200일 시민추모대회>가 준비되고 있다. 5월 20일 토요일 저녁 5시, 서울광장 분향소에 모여 유족의 100번의 밤과 낮을 함께 나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