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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채상병 사건 이후 한국 사회가 달라지려면

실패한 재난 대응의 과정을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

오는 7월이면 채상병이 사망한 지 일 년이다. 그 사이 채상병의 죽음은 정쟁의 화두가 되었다. 채상병의 사망 사건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발표를 앞둔 시점에 대통령이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며 논란의 초점이 조사 과정에서 외압이 작용했는가로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 이미 채상병 특검법이 통과되었지만,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22대 국회가 들어선 지금 채상병 특검법은 다시 입법을 예고하고 있다. 모든 논의가 특검으로 좁혀지는 상황 속에서 재난 실종자 구조작전에 나섰던 한 군인의 죽음이 정쟁의 소재로만 그치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에 던져진 국가의 책임에 관한 과제를 잘 벼려야 할 때다.

해병1사단은 무엇에 실패하였나

재난이 발생하면 국가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구조와 수습에 나선다. 이를 위해 재난상황실을 꾸리고, 소방과 경찰은 물론 군대도 함께 이 재난을 대처하는 과정에 투입된다. 채상병은 이 재난 대응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사망하였다. 국가가 재난 대응에 실패한 결과였다. 재난의 발생이 사회의 구조의 문제에서부터 출발하고, 발생한 재난에 대한 대처는 사회의 역량을 보여주는 과정이라면 채상병의 죽음은 재난 대응 과정에서 실패한 한국 사회의 역량을 보여준다.

2023년 7월 15일 경북에 많이 비가 집중되면서 경상북도는 재난상황실을 꾸리고 경찰, 소방, 군이 협조하는 지휘체계 속에서 구조와 수습에 나섰다. 당시 구조 업무를 위한 군대의 작전통제 권한을 가진 육군 50사단은 채상병이 있던 해병1사단의 책임 지역을 예천으로 할당하며 호우피해 복구 작전 관련 장소 선정 및 투입 규모 판단은 예천군과 협조해 시행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해병1사단의 작전은 협조 요청을 받고 이틀이 지난 7월 17일이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대통령이 현장을 방문한 날이었다. 급하게 출동에 나선 해병1사단 예하 부대들은 출동 직전에서야 수색 임무가 소방이 요청한 수변 수색이 아닌 실종자 수색임을 전달받았다. 구조에 나서는 부대의 지휘체계는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에 다른 대대와의 실적을 비교하며 성과를 내라는 사단장의 질책성 수색 압박은 구조 작전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수중수색의 입수 기준이 무릎 높이에서 허리 높이로 상향되었고, 이는 결국 채 상병의 사망으로 이어졌다. 재난 상황에서 망가진 군의 지휘체계는 실종자 수색에도, 그 실종자를 구하기 위해 작전을 수행한 장병의 목숨을 지키는 데도 실패했다.

다른 한편 채상병의 죽음은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가 갖추어야 할 구조와 수습의 역량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고발한다. 재난 상황에서 위험에 인지와 행동 판단은 그 자체로 국가의 의무이자 역량이다. 또한, 구조자의 안전을 확보하며 구조 업무를 이어 나가는 것 역시 더 큰 재난 피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핵심적으로 갖춰야 하는 역량이다. 구조하는 사람이 안전해야 모두가 살아나올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예천 수색작업에 투입된 채 상병은 자대 배치받은 지 겨우 2달 된 인명구조 경험이 전무한 병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실종자 수색을 위한 장비도 제대로 지금 받지 못한 초보 구조자 가장 위험한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여기에 구조 작전까지 널찍하게 흩어져 대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구조자가 서로의 안전을 지킬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에 현장 지휘관들은 위험성을 인지하고 수색 중단을 지휘부에 건의하기도 했지만 이는 묵살됐다. 결국, 5명이 물살에 휩쓸리고 결국 1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적절한 구조 업무 수행을 위한 지휘 체계를 따르지도, 역량도 갖추지 않은 채 구조자를 투입해 숨지게 한 해병1사단의 구조 작전의 실패는 재난 대응에 나선 국가가 실패한 사건이다. 혹자는 재난 대응이 군대의 본연의 업무가 아니므로 구조 역량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군대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재난 대응에 함께 나서는 것은 명시된 군대의 임무 중 하나다. 더욱이 지난 10년간 대민 지원업무라는 이름으로 군이 재난 대응의 과정에 나서는 경우가 급격하고 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군대의 구조 역량 또한 국가가 예비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채상병의 사망 이후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실패한 국가의 재난 대응의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가이다.

재난 대응 실패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의 의미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사회는 재난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게 되었다. 재난이 그저 안타까운 사고나 불운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부정의가 누적된 결과라는 인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는 재난 대응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이후 지난 10년은 재난 대응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사회 구조에 책임이 있는 국가의 몫이 있음을 확인해온 시간이었다. 재난 발생 현장에서의 구조활동은 어떤 형태로든 위험을 동반한다. 이 위험한 현장에서 국가의 책임을 다하라는 요구는 무턱대고 위험을 감수하라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고 줄이면서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구조 업무를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요구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부터 채 상병 사건에 이르기까지 재난이 참사가 되는 과정에서 국가는 그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매번 책임자를 합당하게 처벌하라는 요구가 등장하고, 이는 곧 국가의 책임을 묻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재난 대응의 국가 책임을 사회적으로 확인해온 지난 시간이 무색하게도 책임자를 합당하게 처벌하는 일은 여전히 실패를 반복하는 중이다.

지금까지 재난이 발생하면 구조 업무에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은 지휘권자의 책임을 묻는 일은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죄 성립 여부에 그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재난이 예측하기 어려운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재판정에 선 이들은 참사라는 결과를 만들어 낼 줄 몰랐다는 핑계를 댄다. ‘그렇게 빨리 배가 가라앉을 줄 몰랐다’거나 ‘그 많은 사람이 압사할 줄 몰랐다’는 주장이 사법적 책임을 면하는 알리바이가 되었다. 결국, 세월호 참사에서는 현장에 출동했던 해경 123정장만 처벌받았을 뿐 해경 지휘부는 모두 책임의 자리에서 비켜났다.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도 용산구청장과 용산경찰청장 모두 책임을 면했다. 채상병 사건도 다르지 않다. 구조의 책임은 말단 현장 책임자에게만 전가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임성근 당시 해병1사단장은 대민지원 작전통제권이 육군50사단에게 있었다며 자신의 부대원이 사망한 사건임에도 자신에게 안전 조치를 취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피하려 한다. 결국 구조작전 실패의 책임을 현장 지휘관에게만 떠맡기려는 지금의 상황은 재난 상황에서 국가의 책임에 대한 요구를 무산시키고 있다.

재난 대응에 실패한 국가의 책임을 정확하게 묻지 못하는 사이에 책임자 처벌의 요구는 종종 권력자들에 의해 그저 직책이 높으면 모두 처벌하라는 말이냐는 식으로 그 진의가 왜곡되어 왔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이런 일로 사단장이 처벌받으면 사단장을 누가 하느냐”고 ‘격노’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이 말은 정확히 한국 사회가 어느 지점에서 재난 대응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사회 구성원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재난 대응의 최종 책임자 역할을 자임해야 하는 대통령이 말단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 내지는 부수적인 피해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임성근 전 해병1사단장과 같이 구조 업무의 직접 책임자가 “군인은 국가가 필요할 때 군말 없이 죽어주도록 훈련되는 존재”라고 말한 인식과도 일치한다. 대통령의 ‘격노’와 임성근의 핑계는 국가가 구조자와 구조받는 사람의 안전 모두를 책임 있게 지켜야 한다는 국가의 책무를 지운다. 임성근에 대한 처벌 요구는 그가 사단장이어가 아니다. 책임자 처벌은 재난 대응의 책임이 국가와 사회에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자 다른 재난 상황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국가의 역량을 키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재난 대응의 국가 책임을 밝히는 특검되어야

채 상병 특검법이 22대 국회의 민주당 당론 1호 법안으로 발의되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무산된 특검법이 수사 외압 의혹에 국한되었다면 재발의된 특검법은 공수처가 수사하고 있는 외압 의혹은 물론 채 상병 사망 사건의 경찰 수사,해병대 수사단의 결과까지 모두 수사할 수 있도록 대상과 범위를 확대했다. 민주당은 7월 초까지 발의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이고, 여당인 국민의힘은 강력하게 반발하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겠다는 방침이다. 수사의 대상과 범위가 확대되었지만 서로 흠집내기에 골몰하는 정쟁의 구도 속에서 채상병 특검법이 활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해소되지 않는다

채 상병 특검법이 정쟁으로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재난 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고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의 역할을 분명히 밝히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효과적이고 적정한 구조작전을 위한 지휘체계는 어떻게 갖출 것이며, 안전하게 구조하기 위해 어떤 역량을 키우고 예비할 것인지, 재난을 예방하기 위해 무엇을 개선해나갈 것인지 등 재난 앞에서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하는 질문은 산적해 있다. 그러나 ‘책임자 하나 처벌하지 못하는 사회’ 라는 진단에 갇혀 여전히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지 못하고 있다. 채상병 사건 이후 한국 사회가 달라지려면 바로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반복되는 재난에도 여전히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이란 구호를 외치지만 바뀌지 않는 사회를 벗어나기 위한 답을 찾는 과정에 특검의 의미와 역할이 있을 것이다. 지난 6월 12일 채상병의 어머니가 해병대를 통해 공개한 편지에는 “진상이 규명되어 저희 아들 희생에 원인과 진실이 꼭 밝혀져서, 더이상 저희 아들 희생에 대한 공방이 마무리되고, 이후에는 우리 아이만 추모하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한다는 간곡한 요청이 있었다. 부디 특검이 이 요청의 응답이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