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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쿠팡 청문회, 쿠팡이 망쳐놓은 세계를 직시하자

지난 11월 9일, 쿠팡 사망 노동자의 유가족들이 시작한 쿠팡 국회 청문회 국민동의청원이 5만 명을 달성했다. 끊이지 않는 쿠팡의 산재 사망 사고에도 사과는커녕 여전히 살인적인 노동강도, 열악한 노동환경을 강요하고 있는 쿠팡의 문제를 제대로 알리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청문회 요구였다. 하지만 청원을 달성하기 불과 며칠 전 국감 현장에서 나타난 쿠팡의 자회사 쿠팡CLS 대표는 다회전 배송의 폐지도 야간 노동 규제에 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스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쿠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 청문회가 던져야 하는 질문의 방향과 모색해야 할 변화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로켓배송’이 변화시키고 있는 일의 세계

쿠팡은 2010년에 설립된 전자상거래 플랫폼 기업이다. 10여 년 사이에 쿠팡은 전국 30여개 지역에 100개에 달하는 물류센터를 보유하고, 국내 대기업 중 삼성전자 다음으로 고용 노동자 수가 많은 기업이 되었다. 쿠팡의 성공은 수백만 종에 달하는 품목을 주문한 당일 혹은 익일 내로 배송해주는 ‘로켓배송’으로 대표된다. 쿠팡은 이를 ‘물류혁신’이라 말하며 인공지능을 활용한 상품관리 시스템과 맞춤형 로봇 등의 첨단 자동화 기술과 전국 규모의 자체 물류망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하루 수백만 건의 주문이 아무리 늦어도 다음날 배송되는 이 ‘혁신’은 쿠팡의 급진적으로 유연한 고용구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쿠팡의 필수적이고 상시적인 노동을 담당하는 물류창고나 배송노동자들은 기간제, 하청노동, 일용직, 계약직, 무기계약직 등의 다양한 계약형태로 일하는 불안정노동자다. 4만여 명에 달하는 물류창고 노동자의 경우, 절반이 일용직이고, 일용직과 계약직을 합친 비중은 90%에 달한다. 이것이 가능한 데는 물류 공급망의 모든 공정을 쪼개고 단순화하여 누구나 알고리즘에 기반한 ‘노동의 일용직화’를 구축한 덕분이다. 매일같이 24시간 쉬지 않고 쿠팡물류센터는 수만 명의 노동자의 노동으로 돌아가지만 동시에 개별 노동자에겐 오늘은 일해도 내일은 일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래서 미래를 그릴 수 없는 불안정한 일자리 환경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 노동법을 회피하기 위한 풀필먼트나 CLS같은 자회사 설립과 개인사업자로 위장한 간접고용 방식의 꼼수까지 더해진 결과가 퇴사율 추정치 76%(2021년 기준) 달하는 결과다. 쿠팡은 기존의 근로계약관계가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회사가 보장할 것이란 노동자의 기대를 꺾고, 고용주의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는 노동의 ‘혁신’을 이룬 것이다.

쿠팡이 고용의 책임은 회피하면서도 생계가 달린 불안정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방식은 성과지표다. 노동의 불안정성을 강도 높은 노동을 강제하는 수단으로도 활용한다. 단적으로 새벽배송 기한 아침 7시는 밤을 새우는 배송기사에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철칙이다. 이를 수행하지 못해 쌓이는 감점이 곧 배당받은 지역의 회수로 연결될 수 있으니,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시간을 엄수해야 한다. 고용관계가 불안할수록 다치거나 아파도 노동해야 하는 구조는 강화된다. 배송기사만이 아니다 물류센터 노동자들 역시 일용직부터 계약직에 이르기까지 공개되지 않는 평가지표 속에서 계약의 연장 유무가 좌우된다. 여기에 쿠팡이 관리한다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강도 높은 노동을 강제적으로 수용하도록 만드는 힘으로 작동한다. 불안정한 고용구조 안에서 위험한 노동환경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는 힘을 모아내는 일은 점점 요원하게 만들고 있다. 쿠팡이 만든 혁신은 노동자의 권리는 보장하지 않으면서 노동력은 강도 높게 쥐어짜면서 만들어낸 결과다. 

쿠팡이 무너뜨리고 있는 세계

쿠팡이 이렇게 노동자를 쥐어짜면서 기업을 경영해온 이유는 결국 쿠팡이 이윤을 내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공격적 투자로 쿠팡은 수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지만, 쿠팡은 이를 “계획된 적자”라고 부르며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에 사활을 걸어왔다. 전국적으로 물류센터를 건설하여 그 어떤 경쟁사보다 빠른 배송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구매 장벽을 낮추기 위해 결제 시스템을 간소화해왔다. 누구든 한번 써보게 유인책을 만들고, 쿠팡을 통한 구매가 빠르고 편리하다는 감각을 만들어내기 위해 적자를 감수하는 투자는 물론 노동자를 쥐어짜는 로켓배송을 중심으로 이커머스 시장을 재편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쿠팡 앱을 사용하는 사용자는 3000만명을 넘어섰고, 유로 멤버십 가입자는 21년 900만명에서 올해 1400만명이 되었다. 쿠팡은 지금도 ‘전국 인구 100% 무료 로켓배송’을 목표로 투자계획을 내놓고 있다.

문제는 쿠팡이 이커머스 업계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질수록 쿠팡을 경유해야만 상품을 사고파는 거래행위가 원활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는 다르게 이야기하면 상품의 판매자도 소비자도 로켓배송의 사용을 강요당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쿠팡은 로켓상품이 잘 팔리도록 만들기 위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납품 업체들에 납품가를 낮추라는 갑질을 하기도하고, 로켓 상품 판매 랭킹 순위를 조작하는 불공정한 행위도 서슴지 않는다. 검색순위 조작으로 공정위 처벌까지 받았지만 이미 독점적 지위를 가진 쿠팡은 이런 식의 처분이라면 더이상 로켓배송 서비스를 이어갈 수 없다는 배짱을 부린다. 수많은 판매자는 울며 겨자먹기라도 쿠팡의 로켓배송 상품 리스트에 본인들의 상품을 등록하기 위해 쿠팡의 요구조건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소비자 역시 내가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쿠팡을 통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도록 만든다. 그리고 쿠팡을 통한 구매행위는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로켓 배송서비스의 이용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지만 가능한 것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온라인 상거래는 애초에 배송을 전제하는 조건에서 쿠팡의 로켓배송만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로켓배송 시스템은 기존 배송 방식과 달리 쿠팡이 정한 로켓배송이 가능한 금액에 맞추도록 하는 낭비적인 소비를 수반하게 만든다. 로켓배송 가능 물품으로 등록된 물건은 일정 금액이 도달해야 배송이 시작되기 때문에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까지 장바구니에 채워 넣도록 만들며 소비를 부추긴다. 이 방식이 싫으면 정기 결제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길 권하며 천원짜리 상품도 추가 배송료 없이 로켓으로 배송해준다고 홍보한다. 고객의 편의를 제공하듯 말하지만, 더 많은 상품을 구매하는 일이 유료 서비스의 소위 ‘본전을 찾는 일’이 되면서 구매를 부추기기는 매한가지다. 이런 낭비적 소비는 불필요한 생산, 포장 쓰레기 양산, 끊이지 않는 유통-배송과정으로 이어져 기후위기 심화를 앞당기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으며 온라인 구매행위가 쿠팡의 노동자 쥐어짜기에 연루될 수밖에 없도록 과정이다. 하지만 이는 쿠팡의 관심사가 아니다. 쿠팡의 성공을 물류의 혁신, 한국의 아마존이 성공한 사례로만 둘 수 없는 이유다.

쿠팡 청문회에 거는 기대

쿠팡의 성공은 온라인 유통 방식의 표준을 바꾸며 쿠팡식 빠른 배송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두의 구매행위가 이런 배송 시스템에 가담하도록 만들고 있다. 쿠팡의 방식이 쿠팡만의 방식이 아니라, 기존의 전자상거래 업계는 물론 오프라인 유통업계까지 물류창고를 세우고, 불안정 노동을 수반하는 배송 시스템을 갖추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더는 빠른 배송으로 노동자를 쥐어짜면서 동시에 더 많은 쓰레기를 양산하는 배송 방식을 이용하고 싶지 않더라도 유사한 방식의 유통업 경쟁이 이루어지는 세계 속에서 이는 쿠팡이라는 회사만 피한다고 가능하지 않은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를 상상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던 쿠팡의 CEO의 말이 현실화할수록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점차 황폐해질 뿐이다.

쿠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기존의 제도를 비틀며 이윤을 획득하고 노동자를 쥐어짜는 이커머스 플랫폼 기업에 어떻게 다시 합당한 책임을 확인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쿠팡 청문회라는 자리는 그저 쿠팡의 고위급 인사 몇몇을 질책하고 추궁하고 끝나는 자리가 아니라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는 플랫폼 기업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쿠팡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한 권리를 지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쿠팡의 문제를 그저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아닌,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모양을 만들어 나가는 계기이자 과정으로 살펴야 한다. 쿠팡 청문회는 그 시작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