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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인 인터뷰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에 절박한

은혜 님을 만났어요

밤 10시 30분. 거짓말 같은 만남이 성사되고야 맙니다.
“우리 요즘 너무 바쁜데, 따로 만날 시간을 잡기는 어려울 거 같아요. 오늘 밤에 안국역에서 밤새우실 건가요? 그럼 그때 어떠세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도 도무지 서로 짬을 낼 수 없는 윤석열 퇴진 국면 막바지에 광장에서 어렵사리 후원인을 만났습니다. 기후정의동맹의 활동가 은혜 님을 소개합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은혜라고 하고요. ‘체제전환을 위한 기후정의동맹(이하 기후정의동맹)’의 사무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사무실에 책상 한 칸을 빌려 아주 합리적인 비용으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웃음)

 

윤석열 퇴진 국면에서 후원인 인터뷰를 위한 만남을 성사시키는 일이 쉽지 않게 느껴지더라구요. 조금 민망하지만 같은 사무실에 계시는 ‘가장 가까운’ 후원인인 은혜 님께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어요. 퇴진 국면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요즘은 좀 멍한 상태로 있어요. 뭔가 너무 많은 일이 휘몰아치니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차분하게 앉아서 고민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돌보는 일도 놓치게 되더라고요. 그냥 급류에 몸을 떠맡기고 살아가는 기분이랍니다. 근데 그게 또 다른 묘한 매력이 있긴 하더라고요. 매일 같이 이렇게 엄청난 인파가 모이는 집회는 사실 처음이거든요. 박근혜 퇴진을 외칠 때에는 활동가가 아니었고, 집회에 한 번도 안 나갔어요. 활동을 시작한 이후에도 이 정도 규모의 집회에 나와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매주 진행되는 집회에 시민들과 함께 참여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벅차오르는 감정이 들더라고요. 특히 행진하다 보면 시민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구호에 떠밀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에 풍덩 몸을 맡기게 되기도 해요. 광장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구호를 힘껏 외치는 순간에 느낌이 묘하더라고요. 시민들의 발언을 듣다 보면 울컥하는 마음도 들고요. 그래서 더더욱 윤석열 퇴진 광장에 기후정의동맹 깃발을 들고 나와 참석하려고 애쓰며 보냈어요.

 

백만 명이 모이는 집회가 흔하게 열리지는 않죠. 대규모 집회 참여하는 게 윤석열 퇴진 투쟁이 처음이라는 게 의워인데요. 그럼 기후정의동맹의 활동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미술을 전공한 후 디자인 회사에 다녔어요. 운동이나 활동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었죠.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기후변화와 동물권 의제를 접하게 되었어요. 아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비포 더 플러드>와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마치 매트릭스의 빨간약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사는 세계가 이렇게 부정의하고 부조리하다니! 그래서 채식도 시도하고, 동물권 운동에도 더욱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기후위기에도 자연스레 관심이 가더라고요. 회사에서도 맨날 기사 읽고 하며 딴생각에 빠져있었어요. 회사 일이 점점 돈을 벌기 위해 버티는 시간으로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제 마음이 가는 곳에 시간을 쓰자고 마음먹게 되었구요. 회사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동물권이나 기후 활동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곳을 찾아다닌 게 시작이었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제가 제 발로 찾아온 청년 활동가여서일까요. 당시에 만났던 분들이 저를 많이 환대하고 자리를 열어줬어요. 활동 경험이 없는데도요. 당시 SNS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청년기후모임을 꾸렸었는데 활동 제안이 많았어요. 의욕이 앞서서 오는 제안 마다하지 않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어느새 기후위기비상행동까지 와있더라고요. 그게 이어져서 ‘탄소중립위원회 해체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탄중위해체공대위)에 결합하게 되었고, 2022년 기후정의동맹을 출범을 함께 준비하고, 2023년부터는 기후정의동맹의 1인 상근자가 되어있네요.

 

얼굴 뵙고 인사 나눈 것은 오래된 것 같은데 기후정의동맹에서의 상근 활동은 생각보다 짧네요. 프리랜서 1인 활동가에서 전업 활동가가 되니 느낌이 많이 다르신가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활동해 왔다고 말했지만, 말이 프리랜서지 정말 최소한의 일만 했거든요. 마음은 활동에 있으니 돈 벌려고 하는 생계 활동을 내팽개치게 되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경제적으로 정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때가 되어서야 겨우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활동에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다 ‘자우’라는 동료 활동가가 제안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십시일반으로 후원금을 모아 한 사람에게 1년 동안 매월 50만 원씩 선물하는 기본소득 프로그램인데, 그 돈을 제가 받게 된 거죠. 그때 돈을 받으면서 활동하는 건 이렇게 안정적인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선물, 그러니까 돈을 받으니까 숨통이 조금은 트이며 활동을 할 수 있더라고요. 하지만 사실 50만 원은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적잖아요.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기후정의동맹에 가서 ‘내가 계속 활동에 전념할 수 있게 나를 먹여 살려라’라고 했죠. 그렇게 준비를 거쳐 기후정의동맹에 사무국 체계가 꾸려졌고, 제가 상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와, 정말 멋지네요.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생계를 책임져달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다니요.

기후정의동맹의 활동이 저에게 준 변화가 많아요. 제가 학생운동 경험도 없고, 어떤 조직에서 활동한 경험도 없고, 개인적인 실천으로부터 활동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지금 기후정의동맹을 함께하는 활동가들을 가까이에서 만나며 운동에 대해 배우게 되는 것이 참 많아요. 관점을 지니고 활동하는 감각, 운동과 운동이 만나는 장을 만들고, 사람을 조직하는 것들까지요. 이런 걸 배우고 함께 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활동을 통해서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구나’하는 용기도 얻고, 하나씩 배워가고 있어요.

한편으로 또 활동을 하다 보니 쌓이는 어려움도 있긴 해요. 기후정의동맹이 에너지 의제에 집중하면서 ‘공공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활동가로서 에너지 산업에 대해 얼마나 전문성을 갖추어야 하는지 감을 잡는 일부터 쉽지 않더라고요. 물론 이런 부분에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진행이 되는데요. 제안자로서 책임이 따라온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요. 특히 기후정의동맹은 연대체인 조직인 만큼 사랑방과 같이 기후정의동맹에 소속된 여러 단위들의 의지와 돈으로 굴러가는 곳인데 그에 걸맞은 활동을 하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만들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어쨌든 이런 종류의 책임감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활동해 나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연대체를 많이 참여하는 사랑방 활동가로서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말씀해주신 김에 퇴진 광장 한복판에서 공공재생에너지 피켓을 번쩍 들고 있는 기후정의동맹 활동가 분들을 본 적이 있어요. 윤석열 퇴진과 공공재생에너지의 간극이 조금 멀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동시에 광장의 피케팅이 화려하고 멋지더라고요.

(하하) 저희도 고민이 있었죠. 12.3 비상계엄 이후 퇴진으로 모든 의제가 다 빨려 들어가는 듯 보였는데, 사실 윤석열은 엄청난 기후악당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전국 단위의 기후 환경 단체들이 모여서 오픈 마이크를 토요일마다 열고 집회도 했어요. 2월 초까지는 기후정의운동과 윤석열 퇴진이 왜 연결되어 있는지 열심히 말하기 위해 애썼던 것 같아요. 근데 이게 아무래도 이슈가 멀다고 느껴져서인지 동력이 쉽게 생기지 않고, 더 확장되는 기획을 같이 만들기 어렵더라고요. 활동하시는 분들도 지금 국면에서 기후정의를 중심으로 퇴진 이야기를 모아내기보다는 윤석열 퇴진 운동 자체에 힘을 싣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방향을 바꿔내는 기획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처음에는 유인물을 나눠주면서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대책으로 정의로운 전환과 공공재생에너지 확대의 필요성을 알렸는데요. 광장에 오는 사람은 수만 명인데, 우리가 나눠줄 수 있는 유인물은 2천 장 남짓이 가능하더라고요. 전달이 잘되는지 확인되지도 않고, 읽기도 전에 쉽게 버려지는 것 같아서 다시 방향을 바꿨죠. 그런 노력 속에서 공공재생에너지연대 차원에서 기획하고 시작한 게 피켓팅이었어요.

‘차라리 눈에 확 띄자! 일단 이름부터 알려야 된다!’ 공공운수노조 동지가 적극 어필했어요. 광장의 ‘정대만 깃발’을 모르는 사람은 없잖아요. (만화 슬램덩크 캐릭터를 좋아하는 기수가 든 깃발로, LED 조명이 반짝이는 '불꽃남자 정대만' 글자로 인해 윤석열 탄핵 광장 초반부터 주목을 받았다.) 우리가 가진 자원 안에서 최소 비용과 소수의 인원으로는 존재부터 알리는 게 먼저다 싶어서 피켓팅을 시작했어요. 공공재생에너지연대로 모인 발전소 노동자와 활동가들이 매주 만나서 ‘공공재생에너지’를 한 글자씩 들었어요. 정말 얼굴에 철판 깔고 뻔뻔하게 말이죠. 모두 퇴진만 이야기하는 광장에서, 게다가 아직 잘 알려지지도 않은 주제로 다짜고짜 피켓을 들이미는 일이라 거슬리게 느낀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진짜 무조건 알려야 된다, 알릴 거다! 이런 마음이었거든요. 윤석열만 퇴진한다고 그 다음 세상이 바로 열리는 것도 아닌데, 당장 노동자와 지역에 닥칠 위기에 제대로 된 대책이 없잖아요.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민영화 문제도 너무 심각하고요.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을 절박하게 알려내서 윤석열 퇴진 이후의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띄우기 위한 발판을 만들겠다는 마음이었죠.

그렇게 비장하게 나왔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어요. 호응하는 얼굴들도 많이 마주했고요. 응원하는 말을 건네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조끼를 입은 동지들이 함께할 때는 발전소 노동자라는 걸 알아보고 응원을 더 많이 해주시기도 했어요. 윤석열이 구속 취소 될 때까지 꾸준히 참여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는 피켓을 못 들었는데 걱정이긴 해요. 사회대개혁 과제가 잘 안 다뤄지잖아요. 퇴진 이후에 이 불씨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고민이 많습니다.

 

은혜 님의 절박한 마음을 응원하며 저도 사랑방 활동가로 함께 하겠습니다. 이제 질문을 바꾸어서, 사랑방은 어떻게 알고 후원까지 시작하게 되셨나요?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에서 진행한 기후정의 세미나에서 인권운동사랑방이라는 단체를 처음 알게 되었어요. 정확히는 뒷풀이인데요. 세미나 마치고 뒷풀이에 갔거든요. 그 자리에 사랑방 활동가 정록이 탄소중립위원회에 맞선 싸움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며 사람들을 조직하러 왔더라고요. 그때 처음 알게 되었죠. 탄중위해체공대위-기후정의동맹 출범을 준비하면서 사랑방 활동가들을 더 많이 알게 되었고요. 후원은 자연스러웠어요. ‘이 정도의’ 동지들이라면 믿고 후원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근데 진짜 같은 공간에서 일 해보니까 그 느낌이 확인되긴 하더라고요. 매주 종일 저렇게 애써서 조직의 입장을 벼리기 위해 토론하고 공부하면서 운동을 만드는구나 싶었고,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배우게 되는 것들도 많고요. 사랑방이 30주년 때 내건 슬로건처럼 운동을 ‘엮으면서’ 한다는 것은 저런 과정을 포함하고 있구나 싶었어요.

 

칭찬이시죠? (웃음) 마지막 질문으로 ‘엮으면서’ 운동하느라 애쓰는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한마디 전해주세요.

서로를 더 잘 아껴주세요. 항상 바쁘게 움직이시는데요. 각자도, 서로도, 더 잘 돌보면서 숨통 틔워가며 운동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