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청원권 인정’ 조항 등 핵심조항 유보
정부가 지난 9월 2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이하 고문방지협약: 편집자 주) 가입 동의안”에 핵심 조항에 대한 유보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이 28일 확인되었다.
중요한 개인청원권 유보
정부는 이 동의 안에서 “이 협약에 가입함으로써 대내외적으로 정부의 확고한 인권보장 의지를 보이고, 인권존중국가로서의 우리 나라의 이미지를 고양하며, 인권문제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제고하고자 함”이라고 제안이유를 밝히면서도 “이 협약의 제21조(국가간 문제제기권) 및 제22조(개인의 청원권 인정)의 선택조항은 금번에는 수락하지 아니함”이라고 하여 가장 중요한 조항을 뺀 채로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하겠다는 정부의 의사를 밝혔다.
고문방지협약은 48년에 발표된 유엔의 세계인권선언 제5조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고문을 받게 하여서는 아니 되며, 잔혹하고 비인도적 또는 굴욕적 처우나 형벌을 받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과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 제7조(B 규약) “어느 누구도 고문 기타 잔혹한, 비인도적 또는 굴욕적 처우나 형벌을 받지 아니한다”는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고문을 받지 않고 잔혹하고 비인도적이며 굴욕적 처우나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협약을 위한 기초는 75년 12월 9일 제30차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고문 및 기타 잔혹한, 비인도적 또는 굴욕적 처우나 형벌로부터의 모든 사람의 보호에 관한 선언”으로 마련되어 9년간의 국가간의 협의 끝에 84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채택되었고, 이 협약의 약속에 따라 20개국이 가입한 지난 87년 6월 26일 정식 발효되었다(94년 6월 1일 현재 82개국이 가입).
이 협약은 전문 및 본문 3부 33개조로 구성되어 있는데, 협약의 전문에서 유엔헌장의 원칙 가운데에 전 인류의 평등 및 불가양의 권리의 승인이 세계의 자유, 정의, 평화의 기초로 되어 있는 것, 이들의 인권이 인간의 존엄성으로부터 유래한 것임을 밝히고 있고, 유엔헌장, 특히 제55조에 따른 국가의 의무가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편적인 존중 및 준수의 촉진에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가입결정
우리 나라 정부는 지난 6공화국 시절부터 이 협약의 가입 의사를 밝혔고, 특히 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한승주 외무부장관이 지난해 6월 14일부터 25일까지 열렸던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에서 “대한민국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선택의정서를 포함한 거의 모든 주요 국제인권협약에 가입하였습니다. 또한 금년(93년)내에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하기 위하여 국내절차를 추진중이며, 나아가 이러한 제 협약상의 모든 의무를 충실히 준수해나갈 것입니다”라고 국제사회에 약속하였고, 올해 8월 1일부터 26일까지 열렸던 제46차 인권소위원회에서도 이와 같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광범한 고문의 개념을 인정하는 본 협약의 가입에 따른 국내법과의 마찰, 국제적인 의무조항의 이행에 따른 부담 등으로 정부 각 부처간에 의견이 대립되어 올해까지 넘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협약가입 따른 국내법제정비 필요
고문방지협약 가입 동의 안이 이번 정기국회를 통과할 경우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유엔사무총장에게 기탁하게 되며 접수된 날로부터 30일이 되면 정식으로 이 조약의 효력이 발생된다.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국가는 조약 발효 1년 안에 최초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며 이후 4년 단위로 보고서를 제출할 의무를 지며, 고문방지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고문행위 및 인권유린 행위의 시정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명분만을 노린 협약가입이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개인의 청원권을 인정하지 않게 되면 당해 국가의 어떠한 개인도 청원을 제기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정부의 협약 가입동의안에 대해서 인권전문가들은 핵심을 뺀 채 가입하여 국제적인 명분만을 얻으려는 기만술책이라는 비난이 높다. 인권단체들도 정부의 이러한 가입동의안 내용이 알려지면서 이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을 광범하게 논의하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