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들, 농성장 강제철거
15일 밤 9시경 명동성당 입구엔 50여 명의 철거반이 나타나 전해투와 한의대생들이 사용하던 농성장을 완전히 때려부쉈다. 철거의 현장책임자는 성당 평신도회 회장과 사무장, 철거반원은 신도들이었다. 천막을 쓰러뜨리고, 집기를 칼로 찢어버리던 그들은 더 이상 사랑의 전도사도, 약자의 이웃도 아니었다.
16일 오전 명동성당에선 더 이상 전해투의 깃발이 보이지 않았다. 형체를 잃어버린 농성장은 찢겨진 플래카드와 천막, 스치로폴 조각들이 널린 쓰레기 더미로 변해버렸고, 그 위로 전해투의 깃발 대신 ‘근조, 명동성당’이라고 쓴 깃발만이 펄럭였다.
전용철(39․의보노조 해고자) 씨는 “갈 곳이 없다. 당장 오늘부터 노숙에 들어간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한의대 농성단인 이철완(한의학 박사) 씨는 “평신도들이 스스로 나선 건지 정부의 압력이 들어온건지 의심스럽다”며 “마이클 잭슨도 만나는 추기경이 우리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명동성당은 민주화의 성지가 아니라 또 다른 인권탄압의 현장으로 바뀐 것이다. 거기엔 최소한의 포용력조차 실종된 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 일은 단지 몇몇 신도들의 과격행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장덕필 주임신부는 지난 13일자 주보를 통해 “농성장이 짜증과 무관심을 자초하고 있다”며 ‘더 이상 농성장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신도와 목회자가 공범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