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신입 인권활동가 공동교육에 참여하면서 ‘인권활동가의 기록활동’에 대해 강곤 님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인권활동으로서 글쓰기와 기록은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는 강곤님의 이야기가 유독 기억에 남았습니다. 후원인 인터뷰를 기회삼아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여쭤보았습니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40대 중반, 두 딸내미의 아빠... 첫 질문이 제일 어렵네요. 예전에 쓴 지은이 소개의 요약으로 대신해도 될까요? ^^ "기억하기와 기록하기에 관심이 많다. '희망은 인간의 불완전함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을 믿고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답보다는 질문이 궁금한 삶을 살아가려 애쓰고 있다."
◇ 사랑방과 인연이 꽤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사랑방을 후원하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1990년대 중반 대학을 다닐 때 학생회관 게시판인가에 붙어 있던 <인권하루소식>을 통해 사랑방이란 곳을 알게 되었죠. 사랑방 사무실에 놀러(?) 가고 활동가들을 만나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 제가 민변이라는 단체에서 활동을 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싸움과 반인도적 국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특별법 제정 운동 등을 하면서부터였습니다. 후원 계기는 딱히 없는데요. 술자리에서 미류가 후원인 신청서를 내밀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동안 아무도 제게 신청서를 주지 않았을까가 더 궁금하네요.
◇ 세월호작가기록단에도 함께 하고 계신데, 강곤 님께서 생각하는 기록활동의 매력이 궁금합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거대담론, 중심 서사가 아니라 소소한 이야기, 뒷담화 같은 것들, 온전히 드러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듣고 남긴다는 점이 좋습니다. 이것이 진실이고 참이다 라고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참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라 늘 겸손하고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도요.
◇ 신입 인권활동가 공동교육에서 들은 강곤 님 강의에서 사회적 약자, 소수자 모두가 자기의 역사를 스스로 말할 수 없는 한 인권활동가의 기록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내용이 기억에 남는데요. ‘기록’이라는 형태가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금 생각해보니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자기 역사를 스스로 말할 수 있게 될 때도 기록은 여전히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기록=글쓰기는 기본적으로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기록, 글쓰기는 위에서 아래로, 다수가 소수를, 중심이 주변부를 향하는 경향이 있죠. 그렇지만 인권활동으로서 글쓰기, 기록은 최대한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나 스스로가 나를 말하는 것과 평등한 관계의 누군가가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러한 대화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는 존재를, 그리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참여했던 기록활동 중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또는 특별히 어려웠던 경험을 나눠주신다면?
저의 미숙함이나 준비 부족 등으로 잘 되지 않았던 작업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랜드 파업 투쟁에 참여한 여성 조합원 인터뷰를 그 집에서 하게 되었는데 아이들과 남편이 등장해서 엉망이 되었죠. 한편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작업을 하면서 세월호 생존 학생 인터뷰도 결국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여러 가지로 준비도 많이 했고 세심하고 접근한다고 했는데 결국 그 생존학생은 증언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통해 역시 기록은 일방향의 작업이 아니라 쌍방향의 대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기록이 제게 더 소중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 기록 활동에 영감을 줬던 책이나 영화 등 추천하고 싶은 게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너무 많습니다. 일단 님 웨일즈의 <아리랑>을 권하고 싶습니다. 20대 초반에 만난 책인데 당시에 너무나 충격적이고 감동적이었고 지금 제가 기록활등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책입니다. 그리고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도 추천합니다. 제가 예전에 인권오름에 쓴 서평을 참고해주시길. ^^ (도처에 있는 ‘카탈로니아’를 위하여-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 hr-oreum.net/article.php?id=1396) 더불어 난쏘공으로 유명한 조세희 작가의 <침묵의 뿌리>, 존 버거의 <제 7의 인간>, 조은 교수의 <사당동 더하기 25>도 르포르타주를 공부하면서 큰 영향을 받았던 책들입니다.
◇ 요즘 가장 관심 있는 인권 사안이나 흥미를 갖고 계신 주제가 있나요?
제가 지난해부터 탈북자 조작간첩 사건에 대응하는 단체에 반상근을 하고 있습니다. '민들레_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는 단체죠. 자연스럽게 북한이탈주민의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한국사회에서 가장 다층적인 차별과 소외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자 향후 한반도 문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그것과는 별도로 80년대 의문사 유가족 분들의 생애구술사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국가권력에 의해 자식들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고 그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유가족들이 이제 고령이 되었습니다. 민주화가 되었고 정권이 교체되고 그랬지만 무수한 의문의 죽음 중 속 시원히 밝혀진 것, 가해자가 밝혀지고 처벌 받은 것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한국사회의 불처벌의 문제는 민주주의 지속가능성, 인권의 진정한 뿌리 내림과 맞닿아 있지 않을까, 그분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은 어쩌면 87년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통렬히 반성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 마지막으로 사랑방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그간 사랑방의 활동과 논평을 통해 참 많이 배웠고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늘 먼저 고민하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며 질문을 던져주었던 사랑방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냥 느낌적으로 한국사회에서, 한국의 사회운동에서 인권운동, 인권활동가의 위치와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언제나처럼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