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주민 등 철거민 구속자만 잇따라
지난달 25일 발생했던 전농동 강제철거 사건에 대한 수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용역회사의 강제철거 과정에서 발생한 화재로 주민 1명이 사망하고 9명이 중경상을 입은 이번 사건에서는, 무엇보다도 화재발생 원인을 규명하고 그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사건발생 한 달이 되어 가도록 화재원인과 책임자 규명은 뒷전으로 밀린 채, 오히려 피해주민과 철거민연합 소속 회원들이 잇따라 구속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구속자는 15명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엔 화재 당시 부상을 당한 환자들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화재 발생 당일 농성자들에게 음료수를 전달하러 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해 화를 당했다는 김재열(48․청량1동 주민) 씨는 당시 입은 부상 때문에 경희의료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고 있었으나, 20일 오전 병실에서 경찰에 연행당했다. 사건발생 직후 곧바로 구속된 김명식(전농동 주민) 씨도 여전히 깁스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구치소에 수감중이지만, 기초적인 치료만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경찰의 편향수사 못지 않게 철거민측의 대응양상도 사태해결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전국철거민연합(의장 남경남)측은 사건발생 직후부터 “방화책임자 처벌, 정권퇴진”등을 주장하며 집회와 농성 등의 투쟁을 벌여왔지만,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가져다줄 진상조사작업과 민․형사소송 등 법적 대응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해왔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힘으로만 대결하면 결국 깨지는 결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라며, “특히 ‘가수용시설 합의서 파기’건은 주민들이 민사소송에서 충분히 승소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전농동 사건의 발단이 된 가수용시설 합의서는 지난 96년 5월 3일 선경건설과 용역회사인 적준토건, 재개발조합, 철거민대책위원회 등 4자가 합의 공증한 것으로, 96년 5월까지 주민 52세대분의 가수용시설을 짓고 그해 9월까지 입주하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관할 구청인 동대문구청측도 이 합의서를 승인한 바 있다. 그러나, 선경건설측은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97년 6월 동대문구청으로부터 강제철거 계고장이 발부됨에 따라, 주민들은 6월 23일부터 철탑망루 농성을 시작하게 되었고, 7월 25일 박순덕 씨의 사망을 가져온 강제철거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한편,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등 2백여 명은 21일 을지로 선경본사 건물 앞에서 시위를 가지면서 “방화책임자의 처벌”등을 거듭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