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사고의 융단폭격에 방치된 국민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첫날 현장에서 8명을 구조하는 등 한 달 동안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강아무개(36) 씨가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강씨는 경찰서에서 “삼풍사고후 일상으로 복귀했으나 눈으로 직접 목격한 끔찍했던 참상들은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며 “사체들이 나타나고 집이 무너지는 환상과 악몽에 시달린 끝에 고통을 덜어보려고 히로뽕에 손을 댔다”고 말했다.(조선일보 96년 1월6일자 참조)
사망 5백3명, 부상 7백18명이라는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건국이래 최대사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발생한지 3년이 다되어 간다. 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정신적․육체적 상처는 아물지를 모르고, 그 상처를 비웃는 듯 사회 곳곳에서 부실시공은 끊이지 않고 있다. 미흡한 위기대처능력은 일을 닥친 직후에나 여론의 폭격을 받을 뿐이고, 각종 참사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은 ‘영원한 과제’로 남아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97년 8월 6일 새벽,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사고로 2백26명이 허망하게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또 우왕좌왕이었다. 세계 10위권의 항공시장 규모를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항공사고는 세계평균에 비해 50%나 높다고 하는데 말이다.
개발독재의 결과물
“개발독재의 성장제일주의 이데올로기가 낳은 결과물”이라는 지탄을 면치 못하는 ‘대형사고’는 문민정부들어 연달아 터졌다. 지나치게 높은 사고발생의 빈도와 그 엄청난 규모에 국민들은 하늘도 땅도 물도 믿지 못하고 그저 입을 벌릴 뿐이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뉴스를 장식한 대형참사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이 일상적으로 사고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에 있다.
97년 4월11일 열린 연세대 보건대학원 개교 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바에 따르면 94년 한해동안 교통사고나 산재사고 등으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2만6천6백39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사를 당하는 사람은 주당 5백11명 꼴로 삼풍백화점 사망자수(5백3명 사망) 보다 많은 것으로 지적되었다. 1주일에 한번꼴로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는 꼴이다.
무시받는 생명권
세계인권선언 제3조는 “모든 사람은 생명, 자유 및 신체의 안전에 대한 자유를 가진다”고 천명하고 있다. ‘생명’은 인권의 둘도 없는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 많은 참사에도 끄덕없는 사회, 국가의 계속되는 방임은 결코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로 볼 수 없다. ‘생명권’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와 그에 따른 사회 분위기는 우리의 인권상황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사고는 ‘도처에 잠복, 느닷없는 발생, 뚜껑덮기식의 처리, 또다시 망각’이라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사고하는 지속가능한 개발이 아닌 성장 제일주의의 개발론이 판을 치는 한 그로인한 단기간의 이익은 일부 계층의 것일 뿐이며 다수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사고의 원인은 단순히 개인이나 조직의 부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부주의를 조장하고 방임하는 사회적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사고는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를 중심으로 무엇을 중심으로 사고하느냐의 인식의 전환이 없는 한 안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 대형참사 사상자 수 및 주요 책임자 선고형량 >
․93년 구포 무궁화호 열차전복사고: 대법원 남정우 외 16명(업무상 과실치사 등), 최고 남정우 징역1년 집유 2년
․93년 위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사망 289명 실종 3명)
: 대법원 박성일외 7명(허위공문서작성) 2심 박성일, 양기성 징역8월 집유 1년 선고(95년 9월 현재 3심 진행중)
․94년 10월21일 성수대교 붕괴사고(사망 42명)
: 서울지법 형사1부(재판장 한정덕) 신동현(당시 동아건설 현장소장), 박효수(당시 동아건설 부평공장 생산부장) 씨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를 적용, 금고 2년의 실형 선고, 여용원(당시 서울시 동부건설사업소장) 씨에 금고 1년6월 실형 선고(97년 6월)
․94년 아현동 도시가스폭발사고(사망 12명 부상 2백여명)
․95년 4월28일 대구지하철 공사현장에서 도시가스 폭발사고(사망 101명 부상 2백여 명)
: 대법원 형사2부(주심 박준석 판사) 배정길(표준개발 대표)씨에게 무죄선고된 원심 깨고 유죄인정(대구고법으로 파기환송)
․95년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사망 503명 부상 718명)
: 대법원 형사2부(주심 박만호 대법관) 삼풍 회장 이준 씨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죄등을 적용, 징역 7년6월 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