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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인권운동가 서준식 씨의 구속을 바라보며

인권하루소식 1천호가 발간되는 날 오후 장안동 대공분실에서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를 접견했다. 구금상태에 있는 그를 접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 징역을 꼬박 살고 난 후 다시 사회안전법의 보안처분을 받아 10년을 더 청주보안감호소에 있었는데 88년 석방된 후 불과 3년 뒤인 91년 6월 다시 성동구치소에 구금되었다. 겉으로 그에게 적용된 법률은 보안관찰법 위반등이었으나 실상은 당시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른바 유서 대필 사건에서 그가 수사기관에 맞서 끝까지 강기훈 씨의 무죄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겹겹이 경찰병력으로 둘러 싸인 명동성당에 강 씨와 남아 검찰에 대하여서 뿐만 아니라 강 씨가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유서를 대필하고 그의 자살을 사주하였다고 잘못 믿고 있는 대부분의 언론과 시민들을 상대로 강 씨의 무고함을 대변해 왔다. 결국 강 씨는 자진 출두하여 구속되었고 그 또한 같은 날 구속되어 성동구치소에 수감되었던 것이다.

그해 여름에 시작하여 쌀쌀한 늦가을 까지 계속된 그와의 접견에서 우리는 주로 김기설 씨가 남긴 필적 자료를 같이 검토하는 등으로 재판 준비를 하였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그가 그무렵 같은 구치소에서 수감중이던 여러 재소자들의 인권유린 실태를 자주 언급하던 것이 기억난다. 장장 2천4백 여쪽에 3권으로 출판된 『유서사건 총자료집』은 그가 성동구치소에서 출감된 이후 집념을 가지고 펴낸 것이다(요즘 잘 팔리는 책과는 달리 인쇄비를 아끼기 위하여 여백을 없애고 한 면을 반으로 나눈 뒤 읽는데도 눈이 아프도록 작은 활자를 촘촘히 배열되어 있다). 거기에는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을 비롯하여 각종 신문, 잡지 기사, 필적 감정에 관한 관련 문헌 및 인권단체들의 성명서 등 유서사건에 관한 모든 국내외의 자료들이 집대성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 나라에서 책으로는 처음 펴낸 제대로 된 사건 기록이다. 지금도 그 책을 열면 거기엔 그의 비타협적이고 치열한 진실에의 열정이 두꺼운 책 냄새와 함께 다가온다.

장안동 대공분실 면회실에서 우리는 그가 조사받은 내용에 관하여 의견을 주고 받았다. 〈인권하루소식〉 1천호가 나오는 날 여기서 지내며 자축하게 되었으니 이걸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허허 … 하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몇해 전 〈인권하루소식〉이 발간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무렵 미국대사관을 방문하였던 일이 생각났다. 당시 미국무부는 연례적으로 작성하는 한국관련 인권보고서에 참고로 할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는데 공안사건의 변론에 관여한 한국 변호사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던 것이다. 미국대사관의 담당자는 자기가 알고 있는 그 무렵의 중요한 한국에서의 상황을 죽 말해 주었는데 그의 파악이 비교적 세세한 부분까지 정확함을 알고 놀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며 책상위에 놓여 있던〈인권하루소식〉을 들어 보였다.

요즘 검찰이 주도하여 법관에 의한 영장실질심사 봉쇄를 목적으로 국회에서 논의 중인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크게 문제되고 있다. 금년 초 들어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는 한 법원이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여 적극 시행한 영장실질심사 제도는 인권신장에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법원이 이번의 개악을 저지하기 위하여 애를 쓰는 것은 개정안의 통과여부를 떠나 당연하면서도 다행스런 일이다.

그런데 서대표의 경우 이와 같은 영장실질심사제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변호인들의 기대와 달리 법원은 서대표에 대한 심문없이 구속 영장을 발부했다. 영장이 발부되자 변호인들은 구속적부심사를 청구했다. 11월 8일 오전 11시 20분 서부지원에서 그 심리가 있었다. 재판은 1시간 남짓 후에 끝났다. 서대표는 인권운동사랑방과 그의 집에 있는 모든 자료들이 수사기관에 압수되어 증거가 인멸될 여지가 없고, 도망가기는 커녕 사랑방의 대표로서 너무나 해야될 일이 많다고 진술하였으나, 석방청구는 기각되었다.

서대표가 언제 석방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법원이 석방을 거부하였으니 만큼 그의 구금상태는 장기화될 공산이 크다.

그는 이인제 대통령후보의 서울대 법과대학 동기이다. 남달리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꿈많은 재일교포 유학생으로 열아홉살 때 한국에 건너와 이후보처럼 “조국에서 법관이나 변호사가 되고 싶었”던 그는 일찍이 “종3(종로3가)의 매춘부들의 슬픔”과 “껌팔이, 신문팔이, 구두닦이 어린이들”의 참상을 외면하지 못한 탓에 고시공부를 시작하지 못했다. 그의 거듭된 구금은 양심에 따라 살고 속임수를 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받는,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은혜로운 하늘의 상찬일지 모른다. 그의 건강을 기원한다.

이석태(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