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노동자보호법’ 제정, 차기정권으로
“제발 때리지 마세요” “우리는 노예가 아닙니다”(95. 1. 9 명동성당 농성)
쇠사슬을 목에 걸고 절규를 토해내는 외국인노동자들의 모습은 문민정부가 떠안고 해결해야 할 새로운 현안이었다.
노동의 댓가 모멸과 착취
외국인노동자(이주노동자, migrant workers)는 국내 인력난 해소와 값싼 노동력 공급을 위해 80년대 말부터 서서히 유입되기 시작해 96년말에 이르러 21만명 선까지 도달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이른바 3D업종과 영세기업 등에 고용되면서 어느덧 국내 노동시장의 주요 구성원 역할을 맡게 됐지만,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인간 이하의 모멸과 착취였다.
“매일 12시간 이상씩 일을 했습니다. 낮에는 밖에서 열쇠가 채워진 공장안에서 일을 했고 일이 끝난 후에도 갇힌 채 살았습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잦은 구타와 폭행을 당하면서 일을 했지만 사장은 몇 달씩 월급을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이 손가락이 몇 개씩 잘리고 팔이 심하게 부러지고도 보상은커녕 치료비조차 받지 못했습니다.”(94.1.13 경실련 강당 농성장에서)
합법을 가장한 노동력 착취
이러한 외국인노동자 인권문제는 근본적으로 현행 산업기술연수생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각계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국내 노동자들과 똑같은 노동을 하면서도 정식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이들은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었다. 또한 연수생에 대한 낮은 임금은 대다수의 외국인노동자들을 불법취업 전선으로 내몰았고, 불법체류라는 신분적 약점이 외국인노동자들에 대한 인권유린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국제사회 ‘인권탄압국’ 지탄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으로 인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인권탄압국’으로 낙인찍히는 수모마저 겪고 있다. 95년 필리핀 마닐라의 한국대사관 앞에서는 산업연수생제도와 외국인노동자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집회가 벌어졌으며,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놈 개새끼』라는 책이 불티나게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종교․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산업연수생제도 폐지와 외국인노동자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운동이 지속되는 등, 문민정부는 국내외의 압력에 직면했지만, 결국 중소기업협동중앙회와 재계 등의 로비와 입김에 밀려 인권보장책을 유보하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97년 초 외국인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및 산재보험법 등 제반 노동관계법을 적용하고 노동3권을 보장해주는 ‘고용허가제’를 도입하려다 막판에 철회한 것은 자본 편향의 정부에게서 충분히 예상되는 선택이었다.
차별없는 세상을 위하여
96년 8월 남태평양의 원양어선에서는 끔찍한 선상반란 행위가 벌어졌다. <페스카마호> 한국인 선원들에 의해 고깃밥만도 못한 처우와 학대를 당하던 조선족 동포 선원들이 11명의 목숨을 살해한 것이다. 반란주모자로 사형을 선고받은 전재천(38) 씨는 이렇게 전했다. “매일 욕과 몽둥이, 쇠파이프 등으로 맞아 진저리가 났고, 하루에 21시간씩 작업을 하며 흐리멍텅한 정신상태로 지냈습니다. 나는 개라 불렸고, 아내는 암캐라 불렸습니다.”
<페스카마호>의 비극은 ‘반차별 및 강제노동 종식’이라는 세계인권선언의 원칙을 도외시한 결과였다. 외국인노동자문제의 해결은 원칙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동자로서의 지위와 그에 따른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 국내 노동자들과의 근거없는 차별을 철폐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현행 산업연수생제도를 고용허가제로 대체하고,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에서부터 풀어가야 한다.
대선 이후 새롭게 등장할 차기정부가 이러한 원칙을 또한번 무시한다면, <페스카마>의 비극이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지지 못하리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