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태일/ 다큐멘터리/ 비디오/ 50분
<22일간의 고백>은 두 가지 사건을 담고 있다. 하나는 93년 9월 8일 배인오라는 가상의 인물이 터트린 김삼석·김은주 남매간첩단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95년 10월 24일 부여 무장간첩 김동식에 의해 발생된 김태년·박충렬 간첩 사건이다. 또 하나의 잣대를 놓고 분류해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는 프락치의 양심선언으로 그 전모가 드러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미결(?)의 사건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두 사건 모두가 피해자들에겐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앙금으로 남아있다는 것. 이 비디오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들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또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긴장된 음악으로 처음을 여는 이 영화의 화면은 곧이어 모든 등장인물들을 차례차례 보여준다. 피해자들의 체포경위, 불고지죄를 지은 여러 사람들, 김동식 무장간첩의 체포과정,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식, 김삼석·김은주 남매.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모든 사건의 경위를 알아 갈 때쯤이 되면 한 시사 칼럼니스트의 입이 클로즈업 되면서 우리의 감정은 알 수 없는 묘한1 기분과 함께 일종의 교훈을 깨닫는다. 아군과 적군은 누구인가...?
역시 이 영화에서 압권은 배인오가 안기부 직원들을 비디오로 촬영한 부분이다. 전형적인 핸드 헬드(HAND-HELD) 카메라로 촬영된 이 부분은 우리를 약간의 흥분상태로 몰아 세운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나쁜영화>보다 나쁘지 않은데...!' 사전의 계획 하에서 촬영된 이 부분은 <22일간의 고백>이 태생할 수밖에 없었음을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 같다. 여기서 배인오 씨는 김태일 감독보다도 더 안기부의 실체를 해부한다. 누구보다도 근접 촬영했으며 철저한 계획에 의한, 그리고 용기(!)에 의한 영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를 만나 제작후기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지난 96년 11월에 북한으로 망명했다.
한 정신과 의사의 인터뷰 내용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는 그 상황에 우리를 대입시켜보면 정말 끔찍하다. 우리도 박충렬 씨의 말처럼 '친'안기부가 될까? 정말 안기부가 좋아지고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까? 김태년 씨와 박충렬 씨의 증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들이 원하는 모든 내용을 진술하고 서명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럼 안기부 직원들은 박충렬 씨 증언대로 '축제'의 분위기로 돌변을 하겠지..?.
영화가 거의 끝나갈 무렵, 김삼석·김은주 남매가 남산의 한 터널을 빠져나온다. 그 어두컴컴한 곳을 나오며 '개혁의 대상이 아닌 해체의 대상인 안기부'를 얘기한다. 이 터널의 끝은 밝음일텐데... 나 또한 그 밝음을 보지 못 한 채 화면에서 눈을 떼고 만다.
박승관(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영화분과 '영상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