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육군본부 국감에서 임복진 의원(국민회의)은 "비무장지대의 대인지뢰지대는 992㎢, 여의도 면적의 334배에 이른다"고 밝혀 놀라움을 던진 바 있다. 이는 휴전선 접경지역 어느 곳도 대인지뢰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줬던 것이다.
아름다운 모래사장을 끼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섬, 백령도 역시 대인지뢰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지난 26일과 27일 양일에 거쳐 백령도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에 따르면, 지난 74년 이래로 대인지뢰에 의한 피해를 입은 백령도 주민의 수는 7명에 달한다. 이들 중 한 명을 제외한 여섯 명은 모두 지뢰 폭발과 함께 즉사했다. 발목 지뢰도 아닌 살상용 지뢰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백령도에 지뢰가 매설되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재임기간이던 1974년, 새로운 부대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고 사람들은 전한다. 북한과 가깝다는 이유로 군대는 해안선을 따라 대인지뢰를 매설했고, 그 범위는 뭍과 가까운 바다서부터 바다와 가까운 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했다. 그 후, 대인지뢰에 대한 공포는 주민들의 현실적인 문제가 됐다. 지뢰를 매설해놓고서 관리는 소홀히 했던 탓이었다.
76년 오봉빈, 오봉월 형제가 낚시하러 갔다가 지뢰를 밟고 즉사한 이래, 산에 나무 열매를 따러갔던 김준호 씨, 80년 소에 풀 메기러 갔던 서윤항 씨가 대인지뢰의 폭발로 사망했다. 92년엔 진촌리 해병대 초소 앞 야산에서 산나물을 캐러 가던 송동월 씨와 안준단 씨가 대인지뢰의 희생자가 되었다. 박신걸 씨는 77년 바닷가를 거닐던 중 발목지뢰를 밟아 현재는 의족에 몸을 지탱하고 있는 형편이다.
피해자들에 대해 어떤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 또한 매우 안타까운 점이다. 군인들은 대인지뢰 폭발로 피해를 입을 때는 보상금을 지급받지만, 민간인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관리 소홀의 문제점이 드러날까봐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랫동안 군사지역으로 묶여 활동이 제한돼 온 터라, 주민들도 군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한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송동월 씨와 안준단 씨의 가족들은 대인지뢰피해에 대해 국가배상 청구가 가능함을 뒤늦게 알고 96년 각각 2,000여만원의 배상금 지급을 신청했으나 3년의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대인지뢰의 무서움을 익히 아는 백령도 주민들은 한결같이 "쓸데 없는 것 묻었다"고 말한다. 민간인·가축·훈련나온 군인들이 이유없이 희생됐기 때문이다. 해안 대부분 지역에 접근이 제한돼 과거에 솔솔한 수입을 가져다주던 소라, 굴 등을 따는 일 또한 이젠 꿈도 못 꿀 일이다. 생활반경이 좁아진 것은 물론이다. 대인지뢰로 인한 이웃의 죽음을 기억하는 주민들은 대인지뢰지역 근처는 멀찌감치서부터 피해간다. 군에선 무고한 희생자가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대인지뢰 지역에 대한 관리를 강화했다고 하나, 대인지뢰가 매설돼 있는 한 여전히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이와 관련, 백령도 실태조사에 참가했던 한국교회여성연합회의 고동실 간사는 "묻혀있는 대인지뢰는 근본적으로 제거하고 더이상 대인지뢰를 만들어내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미 대인지뢰로 인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국가가 특별법을 제정해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보상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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