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금지!
[ 제5조 : 누구도 고문이나, 가혹하고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형벌을 받지 않는다. ]
고문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잔인한 형태의 인권유린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생명, 건강, 자유, 신체적 불가침성 및 인간의 존엄성 등을 법적으로 특별히 보호할 필요성이 인식되면서, 고문금지는 가장 중요한 인권원칙의 하나로서 받아들여졌다.
지금부터 불과 2, 3세기 전까지만 해도 고문은 합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법으로 고문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점점 확대되었고 세계인권선언 이후에는 인권을 다루는 여러 국제적 문서에서 고문과 “잔혹하거나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이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스스로 고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식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고문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각국의 정부는 고문을 실질적으로 근절시키기보다는 고문행위를 비난하는 데만 열중했다. 지난 1984년 국제앰네스티(AI)는 “1980년대에 세계의 2/3의 정부가 수감자에 대해 고문과 학대를 자행하여 왔거나 묵인하여 왔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고문은 이데올로기나 정치체제의 차이 또는 사회 발전수준의 차이에 관계없이 세계적으로 자행되어 왔으며, 현재도 자행되고 있다.
고문폐지를 위한 노력
1972년부터 고문폐지를 위한 국제 캠페인을 전개한 국제앰네스티와 국제법률가위원회(ICJ)와 같은 민간단체들의 문제제기에 의해 유엔은 73년부터 고문방지조약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 첫 성과로 75년 유엔총회에서 고문방지선언이 채택되었고, 81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는 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유엔고문피해자기금의 설립을 후원하였다. 또 82년 유엔 총회는 죄수 및 구금된 자를 고문으로부터 보호함에 있어서 의료인 특히 외과의사의 역할에 관한 의료윤리원칙을 채택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유엔총회의 요청에 따라 유엔인권위원회는 78년부터 84년까지 7년 동안 조약 초안을 작성하였고, 84년 유엔총회는 ‘고문방지조약’을 채택하게 된다.
세계인권선언이 제정된 1948년 이후 무려 4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에야 ‘고문방지조약’은 햇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5년에 이 조약을 비준함으로써 정식으로 조약당사국이 되었다.
고문은 사라졌는가?
일본제국주의가 우리 독립운동가들에게 자행한 잔인한 고문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수법들은 그대로 독립된 대한민국 경찰에게 전수되어 아주 최근까지 우리 사회에서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군사정권에 의한 강압정치가 막을 내리고 ‘민주화’의 길을 가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제 고문이 사라졌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어가고 있다. 과연 고문은 우리사회에서 사라졌는가? 아니다.
고문은 아직 존재한다
과거처럼 정치범에 대한 물고문·전기고문 등의 격렬한 방법의 육체고문은 거의 사라졌지만, 정치범들에 대한 가혹행위와 일반 형사범에 대한 육체적 고문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고문이 아니다”라고 주장되면서 일반적으로 널리 자행되고 있는 고문형태는 잠안재우기 고문일 것이다. 여기에 정치범과 일반 형사범의 구별은 없다.
한편, 고문피해를 호소하는 경우에 즉각적이고도 공정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고문에 의한 강제 자백이 법정의 증거채택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수사공무원의 광범한 불법행위가 거의 처벌되지 않는 관행 역시 뿌리깊게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고문의 뿌리를 뽑는 길
세계인권선언 5조는 고문의 금지와 함께 “가혹하고, 비인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형벌”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가령 체형, 강제급식 등이 이에 포함된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런 가혹행위에 대해 무감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가혹행위들 역시 ‘고문’의 어엿한 한 형태임을 인식하지 않으면 고문의 뿌리는 결코 뽑힐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