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으로 4년 이상을 감옥에서 살다 나왔지만, 출소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나를 제일 먼저 반긴 것은 친구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담당경찰의 출소신고압력 전화일 뿐이었다. 보안관찰법과의 밀고 당기는 기나긴 신경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린다.
97년 9월30일 출소 후, 지금껏 출소사실 신고서를 내라는 담당경찰의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1년 2개월 동안 끊이지 않는 경찰과 검찰의 출석요구 전화에 전화소리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고 다른 전화를 받기조차 망설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결국 출소사실 신고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11월13일 수원 중부경찰서에 긴급체포됐다가 다음 날 풀려났다. 지금도 검찰의 출두요구 압력을 받으며 언제 체포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고 있다.
나와 같은 출소자나 보안관찰처분대상자, 피처분자들은 늘 담당경찰의 시도 때도 없는 전화공세에 시달린다. 보통 받자마자 ‘뚝’ 끊기는 전화가 십중팔구. 담당경찰이 출소자들의 소재룰 확인하려는 전화다. 어떤 날은 밤 11시에 불쑥 집에 찾아온 경찰이 출소사실 신고를 안 해서 자기 입장이 난처하다며 떠들고 갔다.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까지 감옥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하소연한다. 차라리 감옥에 다시 들어가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쯤 되면 세계인권선언의 ‘사생활권리’ 조항은 한낱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출소자나 보안관찰처분대상자들의 사생활은 보안관찰법이 있는 한 평생동안 경찰의 감시 속에 외줄타기를 해야할지 모른다.
지난 7월10일엔 여권을 신청해서 18일경 찾기로 했지만 안기부가 가로막았다. 여권문제는 보안관찰대상 출소자들 모두가 겪고 있는 고통이다. 세계인권선언 제13조는 “모든 사람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갖고, 자국이나 다른 나라로 떠나고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고 했지만 인권대통령 직속 기관 안기부 눈에는 세계인권선언이 안중에도 없다. 또 국외여행은 물론 이사를 해도 7일 안에 신고하라거나 10일 이상의 국내여행도 자진신고 하랍신다. 남들은 금강산구경도 가는데 한 피처분자는 울릉도 여행마저 금지 당한 적이 있다. 세계인권선언과 우리 현실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가. 세계인권선언이 과연 태평양을 건너왔는지 조차 모를 지경이다. 세계인권선언보다, 또 한국의 헌법보다 보안관찰 담당경찰의 감시와 통제가 더욱 더 피부에 와 닿는 것이 현실이다. 김대중씨가 인권선언에 서명을 했다지만 더 중요한 건 차분히 인권선언을 실천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국가보안법과 보안관찰법 철폐가 그 분위기를 조성하는 첫 번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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