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특수강 해고자들은 어느덧 정리해고에 맞서 싸우는 투쟁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97년 2월 날벼락 같은 정리해고를 당한 이후, 벌써 2년 가까이 투쟁의 행군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97년 3월부터 7개월 간 지속된 서울 상경투쟁, 그 해 10월부터 20일 간 진행된 44명의 집단아사단식투쟁, 가족협의회의 삼미본관 점거투쟁, 그리고 올해 서울역 집단노숙투쟁 등 삼미 해고자들이 걸어온 길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그같은 투쟁의 과정에 중앙노동위에서 “해고무효” 결정이 내려지고, 김대중 대통령이 “중노위 판결을 존중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등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하지만 포철 측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그럴수록 노동자들은 더욱 지쳐 갈 수밖에 없었다. 삼미특수강 고용특위 위원장 김현준 씨는 “될 듯 말 듯 안될 땐 차라리 죽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2년 가까운 투쟁 속에 해고자들의 가정이 겪은 고통 또한 말로 다할 수 없다. 직접적인 생계의 위협은 물론, 아이들의 학원수업이 중단되는 등 가족들의 고통도 가중됐다.
중간에 이탈한 해고자도 있었지만, 1백50여 명의 대오가 거의 고스란히 1년 가까이 버텨낸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정년퇴직을 앞두고도 투쟁에 나선 나이 드신 형님들, 동료들이야말로 내가 버틸 수 있는 동력이었다”고 회고했다. 해고자 신동국 씨는 “노동단체와 사회단체들의 지원도 우리를 지탱해준 기둥이었다”고 말했다.
이제 법원에서도 삼미 해고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포철 측은 대법원에 다시 상고할 뜻을 밝혔지만, 해고자들은 “정의가 살아있는 한 승리는 우리 것”이라고 말한다.
- 1295호
- 1999-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