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빗나간 신념’
“…최장기수 우용각. 그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착잡하다. …그 긴 세월 동안에도 ‘혁명’에 대한 그의 신념이 바뀌었다는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6일자 조선일보 ‘만물상’의 한 대목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를 읽는 우리의 심정은 더 착잡하다. 수십 년 간의 냉전반공 이데올로기에서 한 치도 헤어나지 못한 조선일보 식자들의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만물상’에서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는다”는 우용각 씨의 말에 대해, “투철한 공산주의의 교범을 떠올리게 한다”며 “준법서약서도 생략한 채 그를 풀어준 편법주의가 자유민주 법질서보다 상위개념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 인간의 사상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수십 년 간 0.75평 독방에 가둬두는 것은 과연 자유민주 법질서에 부합하는 것인지.
2월 25일 비전향장기수들의 석방을 앞두고 조선일보는 두 차례의 사설을 통해 이를 극구 반대하고 나선 바 있다. 지난 2월 1일과 24일자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그 동안 많은 반국가사범들이 ‘전향서’를 쓰거나 아니면 현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준법서약서를 쓰고 석방되었는데 비해 이들(장기수)은 그것 자체를 거부한 사람들”이라며 전향과 준법서약 없는 석방을 거듭 만류하고 나선 것이다. 그나마 뒤늦은 조치로서, 아니 자유민주 법질서 아래서라면 당연한 조치로서 환영받고 있는 비전향장기수의 석방이 조선일보에겐 “그래선 안될 일”이었을 뿐이다.
비전향장기수의 석방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반세기 동안 군사정권과 독재권력 앞에서 아첨과 충성을 다짐하곤 했던 조선일보가 과연 ‘자유민주 법질서’ 운운하며 그들(장기수)을 매도할 자격이 있는지. 그들이 숭앙하는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대표주자 가운데 볼테르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의견으로 말미암아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서 싸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신과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을 오로지 ‘적’으로만 파악하는 조선일보가 새삼 귀기울여 할 대목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