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노조, 파업중단 선언
“투쟁! 투쟁!” 우렁찬 함성과 불끈 쥔 주먹들이 명동성당의 밤하늘을 제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울분이었다.
이대로 파업투쟁을 접을 수밖에 없는 스스로에 대한 울분이자, 끝까지 투쟁을 이끌어가지 못한 지도부에 대한 울분이었다. 뒤를 받쳐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끝내 기대를 저버렸던 한국통신 노동조합에 대한 울분이었고, 지난 8일간 지하철 노동자들을 폭도나 테러리스트인 양 매도하며 뭇매를 때렸던 언론에 대한 울분, 그리고 끝까지 지하철 노동자들의 뜻을 이해해주지 못한 국민들에 대한 울분이었다.
26일 밤 명동성당에 집결한 서울지하철 노동자 2-3천명은 8일간의 파업투쟁에 마침표를 찍으며 이같은 울분과 아쉬움,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눈물을 훔치는 조합원들, 기자들을 향해 돌멩이를 집어드는 조합원, 그리고 8일간 고락을 같이한 동지의 어깨를 감싸 안고 떨어질 줄 모르는 조합원들.
이날 서울지하철 노동조합이 파업중단을 선언한 것은 안팎으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24, 25일 이틀간 헬기와 페퍼포그를 앞세우며 서울대에 투입된 경찰력 때문에 조합원 가운데 3천여 명이 대오를 떠났고, 당초 서울지하철 노조에 이어 공공연맹 총파업 투쟁에 동참할 것으로 예정됐던 한국통신 노동조합마저 26일 오전 파업유보를 선언하면서 파업노동자들의 사기도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날 파업중단의 배경에 대해 석치순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은 “투쟁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고 판단됐고, 그래서 투쟁을 재정비하기 위해 전격 현장으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공공연맹 유병홍 정책팀장은 “파업지도부가 더 이상의 파업은 노동조합의 존폐마저 위협하는 악조건이라고 판단해 26일 오후 3시 백보 양보한 안을 가지고 정부와 교섭을 벌이려 했지만 정부의 변함없는 강경한 자세로 교섭자체가 결렬되었다”고 전했다.
지도부의 파업중단 결정이 내려지기 전인 26일 낮 서울대 노천극장에서 한 조합원은 “헬기가 뜨고 온갖 선무방송과 삐라가 살포되는 속에서 우리는 완전히 폭도 취급을 받고 있었고 그때 마치 80년 광주에 와 있는 것 같았다”면서 “김대중 정권의 본 모습이 뭔지 절실히 느낀 만큼 투쟁을 결코 멈출 수 없다”는 결의를 밝히기도 했다. 이 조합원은 한국통신의 파업철회 소식에 대해서도 “복권을 사는 심정으로 한국통신의 파업동참을 기다렸고, 지금은 복권이 ‘꽝’난 것 같은 기분”이라고 실망감을 감췄지만, 그도 결국 기대와 결의 모두를 가슴속에 묻어둔 채 농성현장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 :총파업은 계속된다“
이처럼 착잡함과 울분을 감추지 못하는 속에서도 26일 밤 명동성당의 정리집회에서는 자못 비장한 결의가 이어졌다. “단결투쟁!” “지하철 재파업으로 세상을 바꾸자!” “현장으로 돌아가 새롭게 파업을 조직합시다. 우리는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닙니다!” 현장복귀를 선언하면서도 지하철 노동자들은 그것이 결코 ‘투쟁의 끝’, ‘패배’가 아님을 강조하고자 했다.
민주노총은 “서울지하철 조합원들이 현장으로 복귀하는 것은 파업 조합원의 내부조건과 국민의 편의를 고려한 조치이며 새롭게 조직을 정비해 더 큰 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밝혔다.
또한 민주노총은 27일 대우그룹계열사의 총파업과 대학노조 총파업 등 정부의 일방적 구조조정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하철의 상처를 딛고 노동자들의 행군이 계속될 지 아직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