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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사회복지시설문제, 충격요법을 벗어나야

격리가 최고라는 의식부터 바꾸자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는 매년 서너 차례 세상에 폭로되어 충격을 주고 사라진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보도하고, 정부기관은 당장 문제점을 시정할 것 같이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한 달만 지나면 먼 옛일이 되고 마는 것이 사회복지시설 관련 사건들의 운명이다.

세상 사람들은 사건이 크게 폭로되었으면 당연히 뭔가 바뀌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에바다 사건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시들해지는 순간 인권침해와 비리를 저질렀던 시설 관계자들은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와 실권을 장악해 버린다. 감시․감독의 책임을 방기하고 시설장과 유착되었던 공무원들이 제대로 처벌을 받은 예도 찾기 어렵다.


감옥인구보다 많은 시설생활자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사회복지시설은 7백43곳에 이르고, 이들 시설에는 약 7만3천여 명이 수용되어 있다.

우리 나라 교도소와 구치소의 정원이 5만 9천명이고, 정원이 초과될 때는 수용인원이 7만 명에 육박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시설 수용인원은 교도소 인구와 맞먹으며, 비인가시설의 경우까지 감안한다면 교도소, 구치소에 수감 중인 사람들보다 3배수의 사람들이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많은 인구가 특별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어쩌면 범죄자들보다도 더 열악한 처우를 받을 수 있다면 문제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형식적인 입퇴소 심사

문제가 된 사회복지시설의 문제 중 우선 지적되는 것은 ‘입퇴소절차’가 충분히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까다로운 입퇴소 절차가 각기 규정되어 있다지만 형식적으로 심사가 이루어지는게 대부분이다. 입퇴소 심사위원회도 형식적으로 구성된다. 이 심사 과정에서는 관련 공무원의 뇌물수수와 시설과의 유착이 매번 발견된다. 수용 인원에 따라 정부 지원금이 책정되기 때문에 입소 인원을 늘리고, 퇴소를 못 하도록 막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정부의 지원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문제의 해결은 어렵다는 것이 사회복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감시․감독 의무의 방기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시설에 대해 국가는 당연히 감시․감독의 책임이 있다.

정부가 제대로 의무를 이행했다면 어떻게 수십 년 동안 이어지는 각종 부패와 비리의 사슬이 형성될 수 있을까? 이 사슬이 질기디 질긴 동아줄로 권력과 유착되어 있고, 중앙과 각종 끈으로 연결된 토호세력이라는 권력집단과의 유착은 공무원들로 하여금 적극적인 공범이 되도록 만든다.

엄청난 인권유린과 비리가 확인된 에바다 사건이 해결되지 못하는 것은 이와 같은 시설비리와 유착된 권력이 자신의 발목을 자르지 못하는 데서 연유한다.

이런 권력의 비호 아래서 시설장들은 시설 안에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게 된다. 따라서 그곳에서는 각종 지원금과 후원금이 불투명하게 처리되고, 시설장의 사금고가 살찌게 된다. 이에 반비례하여 수용자들은 저질의 식사와 의류 등을 공급받고, 폭행, 강간, 강제노역에 심지어는 살인과 암매장 등 의 인권유린에 방치되고 만다.

이런 문제들이 폭로되더라도 경찰과 검찰의 수사는 본질적인 문제는 덮고, 주변만 뱅뱅 돌다가 그치고 만다. 양지마을 사건에서 살인, 성폭행, 암매장 의혹은 제대로 수사조차 돼지 않았다. 에바다 사건에서 농아원생들의 의문사가 잇따랐지만 여전히 제대로 수사돼지 않았다. 이런 허술한 수사를 통해 기소가 된 시설장 등은 쉽게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나게 된다.


무엇을 해야 하나

이에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입모아 촉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가책임의 강화’이다. 수용시설은 신체구금의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국가기구가 이를 철저하게 관장하고, 국공립 사회복지시설을 확충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나아가 민간시설은 재가복지사업이나 지역사회보호사업으로 전문화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둘째로 입퇴소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시설이나 시설장 중심의 관련 법규들을 수용원생들의 입장에 맞춰서 재정비해야 한다.

셋째, 시설의 전문화와 소규모화를 추진해야 한다. 시설 생활자의 재활과 사회복귀를 위한 전문적인 서비스가 전문가에 의해 제공되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시설 운영의 민주화와 재정의 투명성 확보다. 비리 시설의 공통점은 족벌체제에 의한 폐쇄성이다. 이사회와 직원이 이사장의 친인척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사회에 친족의 개입을 금지하고, 예결산을 공개해야 하며, 시설 종사자들의 공익노조 건설을 권장해야 한다.

이런 대안들은 시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제기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감시하는 인권․시민단체는 찾아보기 힘들다. 문제는 고질적인데 해결노력은 빛을 보기 힘들기 때문에 결코 환영받는 사업이 아닌 듯 보인다. 무엇보다도 앞서 지적한 고질적인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들은 사회 구성원 전체가 갖는 인식, 즉 부랑인이나 장애인 등을 사회복지시설에 ‘격리수용’하는 것이 좋다는 방어의식에 기생하고 있다.

‘내 눈앞에 안 보이는게 가장 좋다’는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사회복지시설 생활자의 수난은 사회적 관심의 햇살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