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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시평>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정치인들을 접촉하면서 실감하는 일, 그것은 그들이 여당이고 야당이고 국가보안법의 내용에 대해서 별 큰 관심 없다는 점이다. 즉 국가보안법 몇 조 몇 항이 국민의 인권을 크게 억압하고 있으며 따라서 개정 내지 삭제해야겠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중 혹자는 어디를 얼마만큼 손질하는 것이 내년 선거에서 가장 안전한가를 생각하고 혹자는 자기(들)의 자존심에 결정적인 상처를 입지 않고 국가보안법을 개정할 수 있는 선이 어느 선인가를 생각한다. 심각한 표정으로 “북의 위협”을 이야기하는 그들 자신 내심으로는 “북”을 별로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아마도 내년 선거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그들은 국가보안법 철폐까지도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역사적 조건에서 태어난 법이란 강제력 행사라는 방법으로 지배이데올로기를 유지·강화시킨다. 그런데 그렇게 유지된 이데올로기란 상당한 기간 생명력을 갖는 것으로서 그 법이 필요 없게 된 후에도 계속 지배력을 발휘한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국가보안법에 벌벌 떨고 반공의 허위의식으로 길들여진 국민은 국가보안법이 필요 없는 시대가 와도 그 새 시대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혁명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 국보법은 갑자기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희생자는 극히 일부 기득권 층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다. 왜 모든 국민인가를 설명하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러나 이것을 해내지 않으면 국가보안법 반대운동의 대중화는 불가능하다. 안이하게 ‘국가보안법=양심수’의 도식을 만드는 일, ‘국가보안법 피해자선언’을 발표해대는 일, 이것은 고립을 자초하는 운동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교도소에서 ‘양심수’와 ‘잡범’ 사이에 계급이 있듯이 운동권 엘리트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방법이 아닌가?


박영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부국장은 “우리더러 반국가단체라니 남북관계가 풀립니까?”라며 잘하고 있다. (월간 말 11월호) 이렇게 잘하고 있으니까 남한 집권자는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북한=반국가단체’ 규정을 풀고 싶어 안달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철저히 남한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실현시켜 나가는 관점에서 국가보안법을 공격하면 된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국가보안법에 대한 전 방위적 공격이 될 뿐만 아니라 먼 장래에 대비하여 우리 자신 속에 자리잡은 국가주의적 독선과 권위주의의 뿌리를 제거해 나가는 작업이 될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중차대하다.

서준식(인권운동사랑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