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에프 관리체제상황에 놓인 이 나라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어 그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빈곤계층의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하여, 사회적 기본권을 최초로 법인화(法認化)하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최근까지도 이것이 '인권'인가, 단순한 프로그램규정 아닌가 하는 논란이 학자들은 물론 인권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제기되곤 하였다. 이러한 논란이 빚어진 이유는 사회적 기본권이 국가사회의 경제력을 전제하여야 실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인데에서 비롯된다 할 것이나, 인권론의 관점에서 보면, '인권'이 무엇인가 하는 기본 합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아니하다는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권의 바탕개념은 '인간의 존엄'이다. 20세기 후반에 파시즘과의 투쟁에서 획득되어진 '인간의 존엄'의 원론과 구체적 각론들은 나찌의 태생지인 독일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인간의 존엄"과 관련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활성화되어 있지 못하다. 그래서 인권에 관한 토론이 있는 곳에서는 언제나 우리가 '인권'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기본적 의문에 부딪치고, '인간의 존엄'을 기초로 한 인권론의 체계에서 문제를 사유하는 훈련이 우리에게 부족하다는 실감을 하곤 한다. '인간의 존엄'은 그 논의로부터 인권의 다양한 면모와 내용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연역적 개념일 뿐 아니라, 현실사회에서 생동하는 활기로 살아 움직이는 다양한 인권문제들을 통하여 귀납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개념이기도 하다. 이제 누군가, 어디에선가 인권론의 베이스 자체를 구축하는 작업을 진지하게 이끌어나갈 필요가 있다.
종래의 '인간의 존엄'론이 고유한 내면의사를 갖고 있는 인격의 주체성, 자율성을 중심으로 개개 인간의 자유와 본질침해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면, 사회적 기본권이 인권론 영역에서 주요 이슈로 떠오르는 현 시기에 서는 사회경제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인격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환경의 설정에 그 무게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또한 21세기로 접어드는 요즈음, 인간, 인격의 개념 자체가 뿌리에서부터 흔들리는 도전을 받고 있다. 인간의 유전자정보가 완전히 해독되어 목적에 따른 유전자의 조작과 대체가 가능하여지고, 인간복제도 멀지 않은 현실이 되고 있다. 물론 일본에서는 인간복제를 금지시키는 형법안이 마련되는 등, 인간복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안된다고 모두들 쌍수를 내젓고 있지만, 이념적 정당성에 의하여 인류현실의 변화를 미리 막아본 사례는 역사상 거의 없었다고 생각된다. 이미 원숭이복제와 사람의 체세포를 이용한 복제실험이 성공하였다는 소식들이 나라밖에서 들려오는 시대이다. 인권운동 내에서도 이와 같은 미래지향적 관점들까지 아우르며 고민하는 단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절박하여진다.
강금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