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혼잡 책임의 상당부분을 집회․시위자에게 전가시키는 행정편의적 발상으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경찰청의 '도로사용료 징수 의견조사'에 이어 서울시가 행사․집회 주관단체의 교통혼잡 유발에 대해 사회․경제적 손실비용을 부과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교통운영개선기획단은 17일 "도심에서 개최되는 각종 집회로 인해 발생하는 교통혼잡으로 시민불편이 가중돼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손실을 초래한다"며 "교통통제를 수반하는 행사나 집회는 도심 개최를 지양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교통운영기획단은 또 "행사․집회 주관단체가 서울시 교통관리실, 서울지방경찰청과 사전협의를 거쳐 교통소통대책을 수립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행사․집회 등으로 발생되는 사회․경제적 손실비용을 과학적인 모형에 의해 산정하여 행사주관단체에 부과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교통운영개선기획단의 한 관계자는 "건물을 지을 때도 '교통영향평가'라는 것을 한다. 집회나 행사를 하는 경우에도 이런 취지의 평가를 하자는 것"이라며, "이런 취지에서 본다면 교통혼잡을 유발하는 행사나 집회 주관단체가 부담금을 내는 것도 당연히 검토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교통소통대책을 수립하지 못하는 집회나 행사의 주관단체는 차선을 이용하는 시위를 하지 않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법적 권리는 안보이고 행정적 편의만 보인다
이 관계자는 또 교통운영개선기획단의 발표가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의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에 대한 본보 기자의 질문에 대하여 "그런 법률적 검토는 하지 않았다"며, "최근 많이 벌어지는 도심시위로 교통혼잡이 우려돼 구조공학적인 차원에서 교통혼잡비용을 산출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집회시위의 자유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정책을 발표하면서 법률검토 등도 거치지 않았음을 실토한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볼 때 서울시가 교통혼잡의 책임을 상당수 집회시위에 떠넘기는 행정편의적 발상만 앞세운다는 지적이 설득력이 있다.
차병직 변호사는 서울시의 발표에 대해 "서울에 도심아닌 곳이 어디 있느냐?"면서 기본권 침해는 "불을 보듯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차 변호사는 "부담금 산정문제도 대단히 어렵고, 서울경찰청과 교통소통대책을 협의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꿈 같은 이야기"라고 못을 박았다.
한편 민주노총은 17일 성명을 통해 "경찰청의 '도심 차로행진에 대한 의견조사'라는 해프닝이 실제상황으로 현실화됐다."며 "서울시의 이번 발표는 헌법이 보장한 자유도 돈 주고 사야하는 셈"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노총은 서울시의 이런 발상이 △부자에게만 기본권을 보장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집회의 자유도 없다는 것이고 △집회시위가 일어나는 원인을 외면한 속편하기 짝이 없는 행정편의주의라고 규정하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환경운동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도 이 문제를 중시하고, 18일 공동으로 이에 대한 성명을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19일부터 8월 2일까지 경찰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장시간에 걸쳐 도심차로를 사용하여 교통혼잡을 가중시키는 경우 도로사용료를 징수하는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도심 차로행진에 대한 의견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 조사는 마감 4일전인 7월 29일까지는 반대의견이 70%에 육박했으나 막판에 뒤집어져 결과는 찬성의견이 54.5%에 달했다. 이 '의견조사'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번에 서울시가 내놓은 몰상식적인 집회규제 제도 도입을 위한 포석이었을 것이며 경찰청이 온라인 여론조사를 조작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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