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회권 위원회, "한국의 모델, 지속가능한가?"
IMF 구조조정 이후 한국의 사회권 현실이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사회권 위원회)의 심사대에 오른다.
4일 오전 10시 30분(제네바 현지 시각),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회의장에서 사회권 위원회는 내년 25차 회기에서 검토될 한국 정부 보고서에 대한 사전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의 목적은 정부 대표와의 본 회의를 갖기 전에 해당국의 상황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모으고 쟁점사항을 정리하는 데 있다. 위원회는 이 회의에서 민간단체와 유엔 전문기구 관계자들의 의견 등을 청취한 후 본 회의에 앞서 해당 정부 당국에 보낼 '질의 사항'을 확정한다.
이날 회의에는 한국의 인권․사회단체를 대표하여 이성훈 씨(팍스 로마나 사무국장)가 참석하여 한국의 사회권 상황에 대한 민간단체의 의견을 발표했다. 이 씨의 이날 발언은 민변, 보건의료단체대표자회의, 사회진보연대 등 16개 인권․사회단체들이 지난 석 달간 준비한 보고서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씨는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자국 경제를 보호하려는 노력을 봉쇄하고 사회권 보장의 후퇴를 가져왔다"고 평가하면서 "위기의 처방으로 제시된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인해 부의 편파적 집중으로 빈부 격차가 커지고 교육 및 보건의료 부문의 재정은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는 보고서에 실업률, 고용구조의 변화, 소득분배현황 등 97년 이후 사회권 실현이 불균등해지는 상황을 상세히 기술하지 않고 있다"며 의도적으로 누락한 것이 아닌지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질문공세, 위원들 높은 관심 반영
발표가 끝나자, 위원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쏟아내 한국 상황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민간단체의 보고서가 최근 한국의 사회권 상황에 대해 주류언론이나 정부 보고서와는 사뭇 다른 시각을 보여준 때문인지 위원들의 표정에는 고민의 빛이 역력했다.
질의․응답 과정에서는 두 가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첫째, IMF의 구조조정이 한국에서 사회권의 실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리고 정부의 대처방안이 인권의 관점에서 올바른 것이었는가? 둘째, 경제가 호전되면서 사회권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이 한국 정부의 일관된 주장인데, 과연 그런가?
마지막에 인도의 조셉 라지쿠마 씨는 "IMF 경제 위기 하 한국 사회권의 상황이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시사점을 지닌다"며 "사회권의 증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의 경제발전모델이 과연 지속가능한(sustainable)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덧붙였다.
회의가 끝난 후, 위원 중 한 명인 요르단의 사디 씨는 "여러 나라 보고서를 심의하다보니 IMF 등 국제금융기구가 사회권의 침해 및 퇴보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이 드러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해 한국 정부 보고서의 심의에서도 이 문제가 쟁점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한편 위원들을 대표해서 모하메드 사미르 아메드 의장은 이번에 심의된 5개국 중 유일하게 민간단체 보고서를 제출하고 직접 발표까지 한 한국의 민간단체들에게 감사를 표했고,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의 알렉산더 티코노 사회권 담당국장도 "한국 민간단체의 보고서는 위원회와 민간단체간 협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호평했다.
사회권 위원회는 다음주에 쟁점사항에 관한 질문서를 한국 정부에 보내며 한국정부는 이에 대해 서면으로 위원회에 답변하도록 되어 있다. 한국 정부 보고서에 대한 본 심의회기는 내년 4-5월로 잡혀있다.
[해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에 가입한 국가는 2년 내에 최초보고서를 그후 매 5년마다 규약의 국내 이행사항에 관한 보고서를 유엔에 제출해 심의를 받는다. 우리 정부는 지난 90년 이 규약을 비준하였으며 93년에 최초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이번에 심의되는 보고서는 제2차 보고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