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장시간노동-산업재해 악순환
파견 및 용역노동자들이 중간착취로 인한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민주노총․민변․사회진보연대 등 22개 노동 및 사회단체들로 구성된 「파견․용역노동자노동권쟁취와 간접고용철폐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아래 공대위)가 20일 발표한 '2000년 간접고용실태 보고서'에 따른 것이다.
보고서는 "파견․용역․도급․사내하청 등이 서로 형식은 다르지만, 일을 시키는 사용업체가 직접고용을 하지 않는 근로관계라는 점에서 사실상 동일하다"고 보고 이들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실태를 정리하고 있다.
파견직 90%,최저생계비도 못받아
보고서에 따르면, 파견노동자의 한달 평균임금은 70-100만원이 50%, 50-70만원이 40%인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부의 99년 10월 자료를 근거로 제시된 이 통계는 파견노동자들 대부분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4인 가족 최저생계비(93만원) 수준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부의 감독 밖에 있는 간접고용 형태의 노동자들까지 포함한다면 임금의 수치는 더 낮아질 것이라고 공대위 관계자는 밝혔다.
165만원이 33만7천원으로
이처럼 낮은 임금의 주요한 이유는 '중간착취'에 있는 것으로 풀이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용업체에서 업무를 용역화할 때 일단 인건비가 삭감되는 데다가, 용역업체를 거치는 과정에서 다시 30-50%의 임금이 중간착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천제철의 사내하청업체인 거림산업의 노동자들은 한달에 165만원을 지급받아야 하지만 실제 받는 돈은 기본급이 33만7천원, 각종 수당을 포함한 실 수령액이 64만원이었다. 이는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타인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8조와 직업안정법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생계 위한 장시간 노동으로
중간착취에 따른 낮은 임금은 곧바로 생계유지를 위한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대상식품의 사내 하청노동자들은 밤 11시까지 일하고 일요일에도 근무하는 등, 대략 한 달에 100시간 정도의 초과 노동을 해야만 80만원 정도를 받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시설관리에 종사하는 파견직 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연중무휴 맞교대로 일하고 2-3일에 한번 씩 야간 근무를 해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2-80시간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아가 장시간 노동은 간접고용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카드회사에서 텔레마케터로 일하는 파견직 여성 노동자들의 경우, 회사측에서 전화상담 횟수를 감시하고 매일 실적을 공개하기 때문에 오전 8시30분부터 저녁 9시까지 거의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 줄곧 앉아서 말하고 들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이 두통․후두염․청력감소․어깨 등의 근육통과 허리디스크를 앓고 있고 소음성 난청 등 더 심한 증세로 악화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에게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감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고용불안의 위협이었다.
'근로자파견법 철폐' 유일한 대안
공대위는 20일 기자회견을 갖고, "파견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근로자파견법이 제정됐지만 불법 파견은 오히려 더 기승을 부리고 노동자들의 현실은 열악해졌다"며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근로자파견법을 철폐하고 직접고용을 쟁취하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19일 열린 '비정규근로자 권리보장을 위한 법개정안' 공청회에서 김선수 변호사도 "근로자파견에는 고용과 사용의 분리로 인해 중간착취의 위험성과 파견근로자의 인권유린이 항상 수반되므로 원칙적으로 근로자파견제도를 금지하고 직접고용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공대위는 앞으로 매주 수요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비정규직 철폐! 파견법 철폐!"를 촉구하는 정기집회를 전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