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용 승강기가 추락하였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장애인을 죽였다. 서글픈 일이다.언제부터인가 지하철 그리고 열차 역 계단마다 장애인용 리프트가 분주하게 설치되었다. 그 공사 장면과 설치된 리프트의 모습은 우리 마음에 어떤 풍경을 그려 넣어 주었던가? 그것은 마땅히 장애인의 인권과 그리고 사회의 복지에 대한 기쁨의 광경이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하였다. 이번 사고 및 그 동안 몇 차례 벌어진 사고가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과거 언젠가 지방의 한 열차 역에서 장애인용 리프트를 설치하느라 계단 전체를 다시 공사하던 일이 있었다. 매캐한 연기를 피하며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서 "육교 새로 세운지도 얼마 안 지났는데, 또 웬 공사야?", "장애인 시설 설치한대.", "참, 돈 많군."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순간 나도 '그래 그 시설을 얼마나 이용하게 될까?' '이런 시설을 설치하느니보다 차라리 그때그때 마다 사람들로 하여금 장애인의 이동을 도와주도록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자동차 등을 타고 내릴 때에 장애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고, 또 주위의 사람들은 법적인 의무로서 그 장애인을 돕도록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품었다.
그랬던 것이다. 장애인용 리프트는 우리 문화와 인권의 향상을 반영하는 상징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수준에 어울리지 않는 천덕꾸러기 이물질이었던 것이다.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나 역 관계자들 혹은 작업 연기를 마시며 통행하는 사람들 마음 한편에 장애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공동체 건설의 기쁨이 자라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공사를 위한 예산은 어떤 다른 돈보다 소중하게 쓰이고 있다는 생각, 그 공사가 장애인에게 자유의 기쁨을 주고 삶의 힘을 북돋아 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를 보다 품위 있게 만들고 우리의 정신에 사랑을 키워 주리라는 기대감이 아니라, 일반사람들의 냉소주의와 편협한 이기주의 속에서 설치되는 장애인용 시설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장애인의 고통에 대한 인간적 공감이 없이 마지못해 설치된 시설은 결국 장애인의 삶을 끊어 버리고, 장애의 처지 그리고 이 사회 자체를 더욱 비참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장애인용 리프트는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의 위선적인 장식이자 음흉한 포장이었으며, 장애인에게는 하나의 덫이었던 것이다.
생의 고통과 자유의 가치에 대한 공명이 따라주지 않는 인권의 구호와 제도는 공허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해할 따름이다.
◎ 필자는 영남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