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당국, '인공기' 트집…출품포기 협박
공안당국이 완성도 안된 미술작품을 놓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겠다며 전시를 막으려 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28일부터 서울 인사동 '갤러리 사비나'에서는 "사회적 금기인 성과 정치적 검열에 도전하며 표현의 자유를 보여주겠다"는 취지의 '노컷(No Cut, 무삭제)전'(아래 노컷전)이 열릴 예정이다. 그런데 노컷전에 출품될 작품들이 지난 21일 한국일보를 통해 소개된 이후 검·경의 트집이 시작됐다.
출품작 가운데,『아! 한반도』(안성금 화백)에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얼굴이 들어간 인공기가 표현돼 있고, 다른 한쪽엔 성조기 안에 태극기를 표현한 부분이 있다는 점이 공안당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었다.
지난 21일 사진으로 작품(당시엔 미완성) 소개가 된 다음부터, 종로경찰서 보안과 형사들은 『아! 한반도』가 국보법 7조에 규정된 이적표현물에 해당된다며 "작품을 만들면 화가는 물론 전시담당자도 구속이다", "그림을 전시하면 화랑 근처는 경찰들로 둘러쌀 거다"라는 등의 협박을 갤러리 사비나에 해왔다. 또한 경찰은 박정희·전두환 등 전 대통령들의 목에 칼날이 하나씩 꽂혀있는 박불똥 화백의 『칼을 받아랏!』은 명예훼손을 이유로 성애를 묘사한 최경태 화백의 『여고생』은 풍기문란을 이유로 전시하지 말 것을 종용했다.
이에 주최측인 갤러리 사비나는 "작품 전시가 불가능하다면 그 사유와 전시 금지 명령 공문을 보내줄 것"을 종로서에 요청했다. 그러나 종로서는 묵묵부답일 뿐 보안과 형사들의 간섭과 협박은 멈추지 않았다.
참다못한 갤러리 관계자는 종로서장 면담을 요청했고 27일 면담이 이루어졌다. 갤러리 관계자에 따르면, 면담 자리에서 서장은 "그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 국보법 위반 문제는 판사가 결정할 일이지 경찰이 하는 게 아니"라며 "미안하다. 밑의 사람들이 '실수'한 것 같으니 전시회는 그냥 하라"고 했다. 다만, 기소 여부는 검찰이 결정할 일이라며, 국보법 적용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갤러리 사비나 큐레이터 이희정 씨는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경찰관들이 창작행위에 제재를 가하려고 했던 발상자체가 웃긴다"며 "전시회 개최도 방해하고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했으면서 말로만 미안하다는데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안성금(44) 화백도 "작품의 의도는 내 양심만이 알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고 전제하며 "이보다 심한 사상검열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