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민간건강보험 도입" 방침을 밝혔던 보건복지부가 다섯 달이 지난 지금 다시 민간건강보험을 빠른 시일 안에 도입하겠다고 한다.
민간보험 도입에 대한 보건복지부 논리는 간단하다. "현행 건강보험은 MRI검사나 CT촬영 등 비급여 대상종목이 많아 '보충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고, 또한 다른 나라에서도 이미 민간보험이 긍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현행 건강보험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으며, '더 이상 국민건강에 돈들이기 싫다'는 고백성사나 다름없다.
물론, 독일·프랑스와 같은 나라에서 민간보험이 운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 나라에서는 환자들이 의료비 가운데 90%에 가까운 공공보험 급여의 혜택을 받고 있다. 우리처럼 보험 급여률이 50%를 갓 넘기는 게 결코 아니다. 또한 유럽에서 운용되는 민간보험은 '성형수술', '우선 진료 보증'과 같이, 말 그대로 편의를 위한 '보충 역할'일 뿐, CT 촬영 등과 같은 일반진단 항목에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보건복지부는 함께 밝혀야 한다.
그런 기준 없이 민간보험 도입을 강행한다면 이는 반드시 공공보험의 체제약화로 이어질 게다. 지금도 보험금 분담률이 높다고 야단법석인 자본가·사업주들이 민간보험 도입 후에는 그것을 핑계삼아 분담률 축소를 시도할 게 뻔하고, 재정적자를 호소하는 정부는 보험혜택 확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공 건강보험의 적용수준과 범위가 정체되거나 후퇴할 때 피해를 입는 것은 결국 서민들이다. 민간보험료를 부담할 여건이 안 되는 서민들은 질 좋은 서비스와 폭넓은 보험혜택으로부터 다시금 배제될 수밖에 없다.
건강권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별적으로 실현되어서는 안되는 본원적인 인간존엄성의 문제다. 이제 정부는, 건강보험이 공적부조의 한 형태로 사회경제적 분배를 구현하는 도구임을 상기하길 바란다. 보다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건강보험이 '최소한의 공급'을 의무로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보장'을 궁극적 당위로 삼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2001년 국가 예산 중 보건복지부에 책정된 예산은 전체의 6.61%. 정책적 재고와 함께 윤리적 부끄러움을 느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