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은 뒤로, 뒤로! ‘문민’의 허울마저 벗어던지다
‘문민정부’ 4년째였던 96년, 이른바 ‘문민정부’는 8월 연세대 사태에 대한 초강경 진압과 9월 강릉 북한잠수정 침투사건을 계기로 군사정권 시절의 탄압국면으로 급선회했다. 이런 와중에 국민적 저항으로 구속된 전․노 두 전직 대통령의 재판은 ‘사법 쇼’로 전락하였고,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의 사면 얘기가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국내외 노동․인권단체들이 그토록 폐지하라고 요구한 제3자개입 금지조항으로 민주노총 간부들이 구속되었고,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안’이 유엔인권위에 제출됐음에도 국가보안법 구속자는 늘어만 갔다. 영장실질심사제도의 도입, 영화사전심의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도 5공식 인권탄압의 물꼬를 돌리지는 못했다.
96년 <인권하루소식>은 가장 외면당한 기층 민중들의 안타까운 투쟁과 죽음의 현장으로부터 어느 해보다 가까이서 분노해야 했다. 의문의 죽음을 당했던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씨가 1백50일 동안 장례도 치르지도 못하는 동안, 사건을 처음부터 장례 때까지 줄곧 보도해야 했다. 그러면서 그의 죽음 뒤에는 인천시의 거대한 개발음모가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했다. 철거현장 고공철탑이 철거용역반원들의 방화와 파괴 속에서 무너져 내릴 때 철거민 신연숙 씨가 사망한 사건, 해고자들의 쇠사슬 농성, 산재 노동자들의 중대재해 사건 등 우리 사회 밑바닥 인생들의 힘겨운 생존권 투쟁을 작은 지면이나마 담아내려 애썼다.
95년 12월 범민련 사건으로 수배를 받다 구속된 고애순 씨는 임신 8개월인 상황에도 구속적부심이 기각됐고, 결국 태아를 사산하고 말았다. <인권하루소식>은 2월 9일 이를 가장 먼저 취재해 알렸다. “모성애마저 짓밟은 사법부”. 이들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국제사회로 번져나가 결국 그녀의 재수감을 막아낼 수 있었다. 작은 신문이 할 수 있었던 너무도 큰 일이었다. 연세대생 노수석 씨가 경찰의 강경 진압에 의해 사망하자 정부와 경찰은 노 씨의 죽음을 덮으려고만 했다. 이때 <인권하루소식>은 학생 동료들의 증언을 담아 진실을 알리려 했다.
그 해 8월 연세대에서 열린 통일대축전은, 5천8백48명 연행, 4백65명 구속, 3천3백38명 불구속처리라는 초유의 수치를 기록하며, 9일간의 막을 내렸다. 제도언론들은 한총련 학생들을 “‘조선노동당’ 재남 행동대원”(조선일보)이라는 투로 일제히 매도했다. 이에 맞서 <인권하루소식>은 “한총련에 대한 김영삼 정부의 ‘씨 말려 죽이기’ 작전”이라고 규정하고,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경찰들의 성추행 등 온갖 인권침해 행위는 생생한 사실조사를 통해 꾸준히 추적하고, 이를 정기국회에서 이슈로 만들어냈다.
하지만 연세대 사태에서 공안세력이 승기를 잡고 검찰이 공안세력의 수장으로 등장하면서, 검찰공화국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검찰의 주도로 ‘한총련 좌익사범 합동수사본부’가 구성됐고, 이듬해 80년대 식의 공안대책협의회로 거듭 났다. 그 해 12월 초에는 김형찬 씨가 안기부에 수배중인 자로 오인받아 연행돼 고문을 받은 후 이에 분신하여 항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 26일 새벽 6시에는 여당인 신한국당 의원들만으로 안기부법 및 노동법 개악안이 날치기 처리됐다. 이른바 ‘문민정부’는 그 허울마저 벗어 던진 채 이듬해 있을 대통령 선거를 향해 줄달음질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