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끝과 시작을 수많은 민초들은 길에서 맞았다. 일터 바깥으로 사회 바깥으로 내팽개쳐지고 심지어 감옥으로 유배된 이들이 적지 않다. 정작 그들에게 쏠려야 할 눈과 귀는 정치권에서 연일 제공하는 게이트 뉴스에 시달리고 있다. 진승현, 이용호 게이트에 이어 윤태식 게이트를 안겨준 정치권은 그 속에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있다. 지저분함을 따지자면 도토리 키재기지만 공권력이 똘똘 뭉쳐 살인사건을 대공사건으로 조작한 윤태식 게이트가 안겨준 충격은 엄청나다.
이를 계기로 인권운동단체를 포함하여 우리사회의 양식 있는 사람들이 어깨에 짊어져야 할 과제가 또렷해졌다. 조금씩 흘리기로 게이트의 개폐 수위를 조절하려는 작태를 집어치우게 해야 한다. '공권력은 처벌되지 않는다'를 깨는 계기로 삼을 때 게이트는 우리 사회에 허탈과 분노가 아니라 '가르침'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 중에 유명대학을 나오거나 힘있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이토록 짓밟을 수 있었겠느냐"고 울먹이는 수지 김 가족의 15년 고통은 공소시효의 안전띠 속에서 손을 흔드는 공권력의 책임자들에게 우롱 당하고 있다. 살인범을 벤처사업가로 둔갑시켜 키워주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려온 국정원, 국정원을 비롯한 권력기관의 텃세와 비협조에 열리지 않는 과거의 진실, 이에 좌절하고 또 좌절하는 의문사 유가족들, 이 모두를 하나로 꿰뚫고 있는 것은 처벌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권력형 인권범죄자들의 문제(불처벌-Impunity)이다.
권력형 인권범죄자들에 의한 피해자들은 결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로 살아오지 않았고, 불의에 기초한 질서 속에서 '일정한 사실관계'란 것을 규명할 수 없었을 뿐이다. 이제야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때, 어떠한 법률적 구제와 처벌에도 당장 걸리는 시효문제를 돌파해야 한다. 공소시효 돌파 문제는 올해 인권운동의 큰 과제일 뿐 아니라 우리 사회가 '게이트'에서 얻어야 할 유일한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