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시효, 처벌의 장애물인가 인권보호제도인가
"그 사람들이 고통받고 참회를 했습니까? 도망 다니고 숨기나 했습니까?" 84년 청송교도소 교도관들의 폭행에 의해 사망한 고 박영두 씨의 형 영일 씨는 공소시효제도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비단 박영두 사건 뿐 아니라, 수지김 사건, 삼청교육대 사건 등 국가기관이 저지른 조직적 인권유린 사건들은 한결같이 공소시효의 존재이유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공소시효제도란, 범죄가 발생한 후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국가의 소추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역사적으로 공소시효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고대 로마법이었다고 한다. 김성돈 교수(경북대 법대)에 따르면, 계몽주의시대(17?8세기)에는 "어떠한 상황?어떠한 시점에서도 형벌은 집행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시효제도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으나,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공소시효제도가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공소시효제도를 두고 있는 이유는 대략 다음과 같다. △범죄에 대한 사회적 감정과 피해자의 감정이 진정되고 처벌의 필요성이 사라진다는 점 △일정한 기간이 경과하면서 형성된 사실상태를 존중하고 사회와 개인생활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점 △증거가 사라져 진실발견이 어렵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과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점 △범인 스스로 오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속죄하게 된다는 점 등이다.
공소시효 제도 수정 불가피
그러나 최근 밝혀진 수지김 사건의 경우, △범죄에 대한 사회적 감정과 피해자의 감정이 진정된 것도 아니고 △진실발견이 어려운 것도 아니며 △사건을 진두지휘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에게 장기적 도피에 따른 처벌효과를 찾아볼 수 없다. 장 전 안기부장으로부터는 양심의 가책은커녕 속죄의 말 한마디조차 들을 수 없었다.
때문에 박영두?수지김 사건과 같이 국가권력기관을 이용한 고문?상해?살인행위와 의도적인 증거조작 및 사실은폐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의 특혜를 부여할 정당성이 없다는 주장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하태영 교수(경남대 법대)는 "법치국가에서는 '법적 안정성'(신뢰보호)과 '실질적 정의' 모두가 중요하지만, 일정 기간이 경과할 경우 당연히 형벌을 면제받을 것이라는 신뢰는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보호받아야 하는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며,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까지 범인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더불어 "국가권력에 의한 범죄들은 통상적인 범죄와는 달리 그 불법이 밝혀진 때 오히려 충격과 격분이 교차하면서 법적 평화가 깨지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지나온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며, "공소시효제도는 이제 그 법적 한계 때문에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공소시효의 예외를 두는 것에 대한 반론도 존재한다. 배종대 교수(고려대 법대)의 경우는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것은 형벌을 확장하는 결과를 낳게 되며 한번 예외를 인정하기 시작하면 다른 범죄에도 공소시효 배제를 확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공소시효 배제, 소급금지 위배안돼
현실적으로 공소시효를 배제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논란은 죄형법정주의와 소급금지원칙에 대한 해석과 직결된다. 죄형법정주의와 소급금지원칙은 기존 법률로 범죄가 아닌 행위를 새로운 법률에서 범죄로 규정한 후 새로운 법률로 이전 행위를 소급해서 처벌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예컨대 박영두?수지김 사건 등의 가해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이를 가해자들에게 적용하는 문제에 대해, 죄형법정주의와 소급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 기존 주류법학자들의 견해다.
그러나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것이 죄형법정주의와 소급금지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반론과 판례가 이미 존재한다. 69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공소시효 규정은 기존 법률로 처벌가능한 행위에 대해 과거 어느 시기까지 적용할 것인지를 정하는 것'이므로, '범죄를 새롭게 구성한 후 소급해서 처벌하는 것과는 무관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최근 『민주사회를위한변론』44호에 실린 박찬운 변호사의 주장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반인도적 범죄자들의 피난처가 될 수 없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죄형법정주의를 교조적으로 적용시키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움직임에 이제 쐐기를 박아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