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방' 위협, 이주노동자 집회 무산
"한국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필요할 때 사용하고 버리는 나무젓가락처럼 대하고 있다."
21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회의실에 모인 15~6명의 이주노동자들은 정부를 향한 울분을 토해냈다. 애초 이 시각, 이들은 1천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촉구하는 종묘의 집회장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19일 정부가 21일 집회에 참가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집회장 주변에서 모두 잡아 추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이들은 집회에 갈 수 없었다. <본지 4월 20일자 참조>
"어떤 친구는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미리 24시간을 계속 일했어요. 또 집회 때 쓸려고 간신히 핸드마이크를 빌려놓은 친구도 있어요. 피켓을 만들려고 종이도 오리고, 뭘 얘기하고 노래할까 모여서 이야기도 했어요." 노동자로서 당당히 일할 수 있도록 정부에 합법화를 촉구하는 일이 이들에겐 그만큼 절실했다. 하지만 정부의 집회참가자 단속 방침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의 대중 집회는 급히 내국인들의 정부 규탄 집회로 바뀌어 열렸다.
이날 집회에서 사회를 맡은 평등노조 이윤주 이주노동자 지부장은 "전날, 이주노동자들과 대책회의를 했는데, '불법체류자'라는 신분 때문에 출입국사무소 직원을 당해낼 수 없는 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임을 또다시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후 전교조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방글라데시 노동자 모리(가명) 씨는 "우리에게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까지 빼앗는 것은 지독한 인종차별"이라고 규탄했다. 필리핀 노동자 아챠(가명) 씨는 "건강을 해치고 비인격적 대우를 감수하면서 한국 경제에 기여해왔는데, 정부는 우리와 관련된 정책에 대해 말조차 못하게 한다"며 말했다. 네팔 노동자 사마드(가명) 씨는 "포기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노동할 권리를 확보해, 한국을 더 맑은 사회로 만들어나가겠다"고 말해 도리어 그 자리에 참석한 한국인들을 부끄럽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