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자치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무책임한 행정 때문에 참정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지문날인 거부자'들이다.
99년 정부가 옛 주민등록증을 플라스틱 주민증으로 교체하면서 만 17세 이상의 국민들은 일제히 동사무소를 찾아가 열손가락 지문을 다시 찍어야 했다. 그러나 지문날인이란 온 국민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취급하면서, 개인의 신체정보를 일률적으로 채취․관리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신체의 자유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제도다. 이에 따라 스스로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문제는 '거부자'들이 겪는 차별과 불이익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참정권의 박탈이다. 정부는 지문정보를 내놓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자'들에게 어떠한 대체신분증도 부여하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신분증이 없는 '거부자'들로선 투표행위에조차 참여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지문날인을 거부하는 것은 범법행위가 아니다. 벌금이나 과태료가 부과되는 것도 아니며, 정부에겐 법적으로 지문날인을 강요할 권리도 없다. 이 점은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다. 결국 정부의 행정조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적 권리를 제한하고 있는 해괴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범법자로서 징역을 살고 나온 사람들도 곧바로 공민권을 회복하는데, 유독 지문날인 거부자들에 대해 평생 공민권을 박탈하는 이유를 정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등록등본에 사진을 첨부한 증명서'를 신분증명서로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근본적인 대안은 아니지만, 그나마 진전된 입장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주민신분증에 관한 총괄책임을 지고 있는 행자부는 여전히 "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의 투표권 문제는 우리 소관이 아니"라는 무책임한 답변만 내놓고 있다. 기가 찰 노릇이다.
지방자치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지체장애인들을 고려한 위치에 기표소를 설치하는 것이 마땅하듯, 지문날인 거부자들에게 대체신분증을 발급함으로써 그들의 투표권 행사를 보장하는 것 또한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거부자'들의 참정권을 박탈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