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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기회균등의 기초 위에서 교육의 권리를


최근 고교평준화제도가 국제인권규약에 위반된다는 서울대의 연구서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고교평준화는 국제인권규약 중 △학생의 종교의 자유 △자녀에 대한 부모의 종교 교육의 자유 △자녀를 위한 부모의 사립학교 선택의 자유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와 충돌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일면 타당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동에겐 학교에서 종교에 관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한편 종교 교육을 받지 않기로 결정한 학생들은 대체교과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고교평준화제도가 표면적으로 이 때문에 간단히 공격받을 제도는 아니며, 학생 자치를 통한 종교활동의 활성화나 대체교과의 제공을 위한 조치 등을 통해 해결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교육당국이 이런 기본권에 대해 무심하고 게으르다는 데에 있다.

‘선택의 자유가 곧 권리다’는 논리는 횡포이다. 그것은 입시라는 결투를 위해 자유롭게 무기를 구비할 수 있게 해주자는 말과 같다. 교육의 권리는 시장에서 자기 능력에 따라 물건을 사듯이 고를 수 있는 것을 보장해주자는 의미가 아니다. 국제인권규약과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위 연구서의 주장은 건너뛰고 있다. 교육의 권리를 말할 때 핵심 전제는 “기회균등의 기초”이며, 교육이 추구하는 목적은 “아동의 인격, 재능 및 정신적 신체적 능력의 최대한의 계발”과 “인권에 대한 존중”을 핵심으로 한다. 유엔에서 그간 한국 정부에 던져온 문제제기에서도 이점은 확연히 드러난다. ‘열악한 공교육으로 인한 사교육의 가중과 그에 따른 저소득층의 소외’, ‘고등교육에서 사립기관이 지배적이어서 저소득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우려’,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수준에 걸맞지 않게 무상의무교육 제공 단계가 낮다’는 것이 국제인권규약에 기초한 유엔의 지적사항이었고, 그 결론적 권고는 ‘공교육의 강화’였다.

오히려 한국 정부가 ‘고교평준화제도’ 정도의 수준을 경계로 삼고 거기서 더 후퇴하려 한다는 것이 문제다. 국가예산의 20%를 교육을 포함한 사회부문에 할당하자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귀 기울여 교육재정을 확충하고, 학력․직업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에 부합되도록 학교규율을 정비하고, 교육과정의 민주적 편성과 운영을 통해 기회균등을 넘어서 결과의 평등을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국제인권규약 준수이다.

날씨가 춥다. 곧 입시한파가 있을 것이고, 아이들은 ‘시험대기소’에서 긴 겨울방학을 사교육과 어울려 지낼 것이다. 이것이 국제인권규약과 충돌되는 우리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