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개혁과 인권실현의 첫걸음은 부당한 법, 제도로 인해 피해를 당했거나 사회로부터 격리당한 채 기본적인 인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한 대사면 조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민가협 등 3백61개 인권사회단체들의 호소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첫 번째 국정 과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당선 직후부터 '자신의 당선은 국민들의 승리'라고 말해 왔다. 선거 시기 '낡은 정치'의 청산을 외치며 국민들의 개혁열망에 불을 당기지 못했던들, 노 당선자의 오늘이 과연 있었겠는가? 그가 청산하려는 '낡은 정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반인권 악법들을 철폐하고 그 피해를 회복시키는 것은 분명 국민들의 개혁 열망이다. 따라서 노 당선자가 아무런 조건 없이 양심수를 석방하는 것은 '국민들의 승리'를 지속시키기 위한 그의 화답일 것이다.
국가보안법 위반자, 파업권을 행사한 노동자, 한총련 이적규정 적용자 등 석방의 대상은 명확하다. 민가협은 이들 양심수 명단을 63명으로 구체적으로 적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양심수 석방이 63명에 그치면 안 된다는 점을 노 당선자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자신의 양심과 신념이 명하는 바에 따라 병역 대신 감옥을 택한 이들이 1천4백여 명에 이르기 때문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은 엄혹한 군사주의 문화와 종교적 편견 때문에 일제강점 시기부터 시작된 병역거부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양심수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다는 이유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한 이'를 양심수라고 한다면, 병역거부자들 또한 양심수임이 분명하다. 정권을 향한 것이든, 악법을 향한 것이든, 아니면 병역을 향한 것이든, 양심에 따른 행동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역대 정권 중에서 양심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정권은 하나도 없었다. 정권에 반대하고 병역에 반대하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반인권 악법의 매서움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정권 초기 모든 양심수들의 차별 없는 석방! 단호함만이 반인권 악법의 매서움을 녹일 수 있다. 노 당선자는 국민의 열망에 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