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10월달 월례포럼>
"양심적 병역거부"
1. <발제글> "양심적 병역거부, 양보할 수없는 인간의 권리"
최정민(평화인권연대 활동가, duck52@jinbo.net)
1. 징병제에 대한 논의조차 봉쇄하는 사회
지난 3월에 서울경찰청 사이버 범죄수사대에서는 인터넷상에서 게시판을 통해 병역거부를 선동하며 회원을 모집하는 병역기피를 조장했다는 혐의를 두고 사이트 3곳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였다. 이는 현재 사회단체들의 잇단 성명 발표와 게시판 관리자들의 소환 조사 이후 별다른 움직임 없이 유야무야된 상황이다. 이후 한 게시판에서는 이번 사건을 지켜보던 네티즌이 "어느 날 갑자기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내 대신 이 일을 실천에 옮겼고 그들은 수사 기관에 붙들려 갔다. 이럴 수가... 하마터면 정말 난 붙들려 갈 뻔했다. 내가 생각하고 조직하려는 일들이 국가를 위험에 빠트리는 수준의 일이란 것을 알았다. 이러다 정말... 나 언젠가 붙들려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는 글을 남겨 놓았다. 한겨레21에서 여호와증인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기사가 나간 뒤로 인터넷 곳곳에서는 최근 이 문제에 대한 사이버 토론이 진행되었다. 지난 군가산점제 논쟁에서 볼 수 있었던 원색적 욕설은 별로 눈의 띄지 않았지만 논쟁의 고리가 되고 있는 것은 소위 '이단'으로 분류되는 여호와증인에 대한 특혜 시비, 남북한 대치상황 등을 이유로 징병제는 존속되어야 한다는 주장, 하기에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말은 웃기지도 않는 언어도단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증인의 변호인단과 함께 했던 첫 군사재판에 방청을 갔을 때도 변론의 거의 많은 부분을 여호와증인들이 사회에서 이단시 취급되는 몇 가지 이유(예를 들면 수혈거부,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 등)에 대한 해명(?)에 할애하고 있었다. 계속 느껴왔던 거지만 한국 사회는 특히 다양성과 차이에 대한 인정에 무척이나 박하다. 사람들은 '정통'과 '이단', '가짜'와 '진짜' 등으로 구분 짓는 것을 좋아하며 그 보편성에 조금이라도 벗어날 때는 가차없는 차별과 배제로 억압한다. 비단 여호와증인들의 병역거부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일상적 억압도 마찬가지로 작동되고 있다.
2. 양심적 병역거부권
'양심적으로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이하 양심적 병역거부권)는 이미 국제사회에서 인간이 누려야할 기본적인 인권으로 자리잡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는 약 40여 개국이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헌법 및 각종 하위법을 통해 인정하고 있으며, 이들 소수자들의 인권보호를 위해 비전투 분야의 대체복무제도를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란 자기 양심에 어긋나는 신념이나 행동에 강요당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리에 기초하여 폭력과 살상을 준비하거나 행하는 병역을 반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교리에 국한되지 않고 사상적 신념이나 양심을 포함하며 거부의 대상은 군복무 자체(절대적 병역거부), 군대내 특정 제도, 특정한 무기사용, 특정전쟁(선택적 병역거부)등 다양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거부당사자에는 군인과 징집대상자, 일반시민이 모두 포함될 정도로 광범위한 개념이며 다양한 거부운동이 가능하다.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라는 기본권에 속하는 것이며 이 기본권은 세계인권선언 18조와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에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해를 거듭할수록 호소의 수준을 넘어 국가의 의무와 연결시키며 양심상의 이유로 이들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 유럽인권규약 제9조에 의거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유럽의 나라들에 각 나라별 국내법과 관행을 변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 국제 인권단체인 엠네스티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징집대상자로서 양심상의 이유나 종교적·인종적·도덕적·인도주의적·정치적 또는 유사한 동기로부터 나오는 깊은 신념에 따라 군복무 혹은 다른 직간접적인 전쟁 및 무력 행위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 (국제엠네스티, 1991년).' 국제엠네스티는 또한 위 정의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그러한 행위로 인하여 구금 또는 투옥되었을 경우 그 사람을 양심수로 간주한다. 이러한 보편적 양심의 자유에 속하는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무엇을 양심적 병역거부로 볼 것인가 하는 범주에 따라 몇 가지 논란이 되어왔는데 첫째는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절대적 병역거부와 특정 전쟁이나 특정 무기사용 등에 반대하는 선택적 병역거부를 놓고 벌어지는 논란이 있다.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선택적 병역거부는 인정이 되지 않고 있다. 둘째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종교적 의미에서만 국한시키는 경우인데 이것은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과 대체복무제도 도입의 역사가 긴 나라들에서는 이미 그 범위를 확대시켜 종교적 이외의 정치적, 문화적 신념까지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포함시키고 있다. 작년에 대체복무제도가 실시된 대만의 경우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종교적 양심에만 국한시키고 있다. 이외에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사회적으로 보장하고자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에서 위의 논란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 심의의 문제(양심을 판단하는 문제, 판단하는 주체의 문제 등), 대체복무제도의 역종과 기간의 문제(양심적 병역거부권을 권리로써 인정하기보다는 혜택이나 특혜 등으로 바라보는 관점에서) 등이 논란의 지점이다.
3. 한국의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
이미 각 지면을 통해서 알려진 대로 여호와증인들은 해마다 50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집총을 거부하고 감옥행을 택하고 있다. 항명죄에 대한 처벌은 3년의 징역을 선고받으므로 현재 전국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여호와증인 집총거부자들은 1600명을 헤아린다. 자세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제7일 안식일교에서도 종교적 양심에 따른 집총거부의 역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양심·종교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으나 이것이 특수한 법적 이익(징병제와 같은)과 상충하게 되었을 시에는 보장되지 못했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짓고 있다.
한국에서 여호와증인과 같은 양심적 병역거부의 흐름은 종교적 이유 이외의 역사가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군복무 도중 어떠한 이유에서건 병역을 거부하는 또 다른 양심적 병역거부(선택적 병역거부)의 흐름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문무대·전방입소철폐 투쟁·군인들의 각종 양심선언 등 양심적 병역거부의 흐름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했었다.
4. 현재
전국의 각 교도소에 약 1600여명 정도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수감중이다. 이들 병역거부자들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여호와증인 신도들로써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살생을 준비하는 군대와 집총을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입영 자체를 거부하여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시 병역법 88조 입영기피죄 위반자로 1년 6월 내지 2년을 선고받으며 입영하여 집총을 거부하였을 경우는 군형법 44조 항명죄 위반자로 법정 최고형인 3년형이 구형된다. 최근 여호와증인의 변호인단이 구성된 후 항명죄로 처벌받은 70여명이 집단항소를 제기하여 이 중 부모나 혹은 형제가 같은 이유로 복역한 경우 6개월의 형량을 감형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군사법원은 양심의 자유는 '내심의 자유'일 경우에만 보장받을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이 표현되어 국가이익에 중대한 해를 미친다고 보여질 경우는 그것을 억압할 수 있다고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에게 3년형을 그대로 선고하였다. 법정 최고형은 살인 등의 아주 극악한 범죄일 경우 선고되는 것이므로 보통 사건의 경우 이러한 법정 최고형보다 낮게 선고되어 왔으나 이례적으로 항명죄의 처벌은 천편일률적으로 법정 최고형이 선고되어지고 있다. 또한 모범수의 경우 형기의 3분의 1 이상을 복역했을 경우 가석방 대상에 포함되지만 이들 항명죄 위반자들은 보통 형기의 80% 이상 복역시 가석방되는데 이는 군복무기간보다 복역기간이 길어야 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양심상의 이유로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이들에게 획일적인 제도 이외의 다른 대안을 모색한다는 것은 수퍼초울트라 전체주의 대한민국에서는 다른 어떤 사회적 위협보다도 정신이 번쩍 드는 있을 수 없는 일인가보다. 수십 년간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지속되어온 이러한 관행 속에서 심각한 군사주의, 전체주의 대한민국을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코드를 발견하게 된다.
5. 대체복무제도 혹은 민간봉사제도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고 있는 대다수의 나라들은 이들 소수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시스템으로 대체복무제도(민간봉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도입시기나 나라별 특징별로 이러한 제도의 내용은 천차만별이나 대체적으로 군사분야와 관련 없는 사회봉사 분야에서 이들의 병역의 의무를 대체할 수 있도록 제도화되어 있다. 물론 대만의 현재 상황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이 제도의 도입 초창기에는 양심을 규정하는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심사하는 심사위원회의 구성에서부터 논의과정의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사회봉사 분야의 문제, 고용의 문제, 대체복무 기간의 문제 등 너무나도 많은 문제들이 도출되고 실지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데 관련법규만 100가지 이상을 고쳐야 하는 등 사회전체 시스템의 문제가 제기되고 도입 이후에도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개선되어져 나가야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하지만 이 제도를 아주 오랫동안 시행해 왔고 이제 징병제 폐지의 기로에 선 혹은 최근 폐지된 유럽 나라들은 이제 양심적 병역거부는 부끄럽거나 남성답지 못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따라 충분히 선택 가능한 보편적 권리로 자리잡았으며 개인의 양심에 차별을 두지 않고 절차가 까다롭지 않으며 신청서의 서면제출, 90% 이상의 인정 등으로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전체병역의무자의 30%에 이른다고 한다.(독일사례) 하지만 이들 나라에서도 이러한 대체복무제도까지 거부하는 완전거부자(total objector)의 문제는 계속되어 왔고 대부분 처벌받아왔다. 이들 완전거부자들은 국가에 의한 동의되지 않은 동원권에 반대하며 특히 전쟁시에는 대체복무를 시행하고 있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라 할지라도 전쟁에 동원된다는 규정이 명시되어 있어 대체복무제도까지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전쟁이 흔한 나라에서는 전시에는 여성도 동원되기 때문에 여성 양심적 병역거부자들도 있다) 터키회의에서 만난 WRI 활동가 안드레아스 스펙도 완전거부자인데 위와 같은 사유로 대체복무를 거부하였고 8개월의 형을 선고받았으나 처벌받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에게 한국의 인권·평화활동가들의 고민을 간단히 설명하며 우리의 싸움에서 완전거부자들이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고백하였더니 현재의 국가시스템에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털어놓았다. 이들 완전거부자들은 대부분 전쟁과 군대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활동가들이고 이들의 신념은 전쟁과 그것의 원인, 지속시키는 시스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 내부토론회에서 이재승 교수의 말처럼 이 사회에서 자신의 양심을 온전히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법에 의해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인정과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실존하기보다는 내 안에 존재하는 가상의 적을 통한 또는 일상적인 집단화 교육을 통한 군사주의를 넘어서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지난 터키회의에 모였던 활동가들은 운동의 물결이 대단했던 한국에서 모든 남성이 특히 운동권 남성이 병역의 의무를 당연시하고 군대에 갔다는 점을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팔을 빼거나 굶는 경우는 있어도 이 자체를 개인의 양심에 따른 운동으로 생각지 못했었다는 것, 오히려 80년대 군입대를 앞둔 운동권 청년들에게 군대에서 사병들을 의식화·조직화시킬 것을 학습했다는 것은 사회적 분위기와 조건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핏 이해되지 않는 문제인 듯 했다. 1세계 운동권들에게 우리의 운동 역사가 재단 당한다는 조금의 거리낌도 있었으나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는 지금까지 보다 큰 담론을 목표로 지금의 항복은 그 대의를 위해서 필요악이라는 자세로 일관해오지 않았는가 반성이 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양심의 자유, 혹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서 무언가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흔한 주제도 흔한 행동도 아니다. 양심에 꺼리더라도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혹은 좀 더 큰 대의를 위해서 사소한 문제들은 그냥 넘어가곤 했던 우리의 문화에서 특히나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너무나 버거운 주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권리를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운동은 입영을 앞둔 남성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광범위한 영역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예비군 훈련에서 사격 훈련을 거부하는 것, 아이들에게 무기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 것, 군사분야와 관련된 자료 및 홍보물의 부착을 해당 공간에서 거부하는 것 등 아주 다양한 분야의 운동이 가능하다. 잠시 접어두었거나 아니면 몰랐거나 아니면 중요하게 생각지 않았던 우리의 양심에 따른 행동은 아주 조그만 곳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
2. <사랑방 월례포럼 정리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말한다"
이창조(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이야기되기 시작한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습니다. 한겨레21의 기획보도 이후 많은 사회단체와 활동가들이 비로소 병역거부권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무려 1500명 이상의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교도소에 갇혀 있으며, 해마다 5-6백명씩 교도소로 보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지난 13일 열린 인권운동사랑방 월례포럼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이란 무엇이며,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기 위한 대안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자리였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 써보기
이날 포럼은 참석자 모두가 참여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 써보기'로 시작되었습니다. 4개의 조로 나뉘어 30-40분간의 열띤 토론을 벌인 참석자들은 조별로 '양심적 병역거부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살생 반대, 전쟁반대, 위계적 군사문화 반대" 등이 주장되기도 했고, '인간 존엄성의 실현을 위해, 병역의무에 있어서의 선택권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견해도 제출되었습니다. 더불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오래 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해 왔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 정부 역시 1998년, 2000년 유엔인권위 결의안에 동참하는 등, 이미 병역거부권의 인정을 국제무대에서 선언한 바 있다는 점도 지적되었습니다.
여성들도 양심적 병역거부의 주체
'병역거부 선언 써보기' 프로그램에 이어,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최정민 씨의 발제, 그리고 ①거부대상으로서의 '병역'은 어디까지인가? ②절대적 병역거부와 선택적 병역거부 ③'양심'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판단될 수 있는가? ④대체복무제 도입을 둘러싼 쟁점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이 전개되었습니다. 먼저, 거부대상으로서의 '병역'이란 전투부대든 비전투부대든 모든 군 내부의 조직 뿐 아니라, 방위산업체 등 전투지원을 위한 직간접적 관련산업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결론이었습니다. 또한 여성들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의 주체일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2차대전 당시 총알주머니를 생산하거나 총탄을 디자인하는 업무를 요구받은 여성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했다는 사실도 발표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모든 전쟁을 거부하는 자"(절대적 병역거부자)에게만 병역거부권을 인정해야 하느냐는 점에 있어서는, "특정 국가와의 전쟁 혹은 동족간의 전쟁에 국한해서 병역을 거부"하는 등의 선택적 병역거부 역시 인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다만 선택적 병역거부권은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이 제도적으로 인정된 이후에 차근차근 논의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세속적 양심'도 '양심'
병역거부권 인정의 전제가 되는 '양심'의 개념에 대해서는, "고차원적이거나 종교적인 것"만이 양심이 아니며, '세속적' 양심 또한 '양심'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즉, 형제 가운데 군에서 사망한 사람이 있다는 이유, 영화나 주변의 체험을 통한 병역거부 신념 등도 얼마든지 '양심'의 테두리에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러한 양심이 "얼마나 진지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인지"에 대한 해명은 필요하다는 것으로 논의가 정리되었습니다.
"대체봉사 도입 시급"
이와같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대체봉사'(혹은 민간봉사)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견해였습니다. 더불어 군내에서 집총을 거부하고 다른 일을 수행하는 '대체복무' 개념 대신, 군대 밖에서 군과 관련되지 않은 활동을 하는 '대체봉사' 혹은 '민간봉사'의 개념이 더 적합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러한 '봉사'는 '처벌'이 아닌 '권리'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적절한 역종과 기간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는 견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체봉사를 실시하더라도 '국가 동원권의 한계'를 주장하는 '완전거부자'들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들까지 보호하기에는 '법의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군'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병제 또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점도 지적되었습니다. 한편,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군대에 다녀온 남성'들일 수 있으며, 그들이 '피해의식과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여호와의증인' 이례적 참석…MBC PD수첩 방영
이날 포럼에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이미 옥고를 치른 사람 뿐 아니라, 구속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 등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수명 참여했습니다. 여호와의증인들은 지난 수십년간 양심적 병역거부를 실천해 오면서도 일체의 사회적 발언과 행동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회단체들과도 일정한 거리두기를 해 왔으나, 이날처럼 직접 토론회에 참여해 자신들의 견해를 피력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여호와의증인 신도 외에도 평화인권연대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 이재승 국민대 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원, 대학생, MBC PD수첩팀 등이 포럼에 참석했습니다. 한편,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앰네스티 활동가들이 한국을 방문해 24일(수)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여호와의증인들과 간담회를 갖기로 했고, MBC PD수첩팀은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한 방송을 내보내기로(10/23 오후 11시) 했습니다.
3. <사랑방 논평> "1500 양심수를 위하여"
인권하루소식 10월 16일 논평
종교적 양심을 이유로 집총을 거부, 항명죄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39명에게 지난 9월 28일 항소심 선고가 내려졌다. 34명의 피고인에겐 1심과 똑같이 징역 3년이, 나머지 5명에 대해선 가족 중에 같은 죄목으로 복역한 이가 있다는 이유 로 6개월이 감형된 징역 2년6월이 선고됐다.
항명죄에 대해 일률적으로 징역 3년을 선고하던 관례가 깨진 것은 의미 있는 일 이다. 군법원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 앞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인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똑같이 종교적 양심에 따라 '입영'자체를 거 부한 '민간 피고인'들에겐 군복무가 면제되는 최소한의 형량(징역 1년6월)이 선 고됐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군법원의 양형은 여전히 가혹하다. 더불어 이번 재 판은 '실정법의 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해줬다.
전과자란 낙인을 감수하며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양심'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고 싶다. 언제까지 '실정법'만을 탓하며 해마다 수백명의 젊 은이들을 '양심수'로 만들 것인가.
물론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에 대한 논의가 충분치 못한 것은 사실이 다. 그러나 그 책임은 1차적으로 정부에 있다. 정부는 이미 국제무대에서 '양심 적 병역거부권'을 공식 인정해 왔다. 한국정부는 1998년, 2000년 잇따라 "사상· 양심·종교의 합법적 표현으로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을 인정"하며 "양심적 병역 거부와 관련된 법률과 관행을 재검토한다"는 요지의 유엔인권위원회 결의안 (E/CN.4/RES/2000/34)에 찬성했다. 그렇다면 정부는 병역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 과 제도의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오랫동안 '정치적 양심수의 인권'을 우선시 해 왔던 우리의 '인권관' 역시 다시 성찰해 볼 때다. 종교적 소수자라고, 내놓고 싸우지 않았다고, 그들의 인권이 뒷 전으로 밀릴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대체복무제'를 비롯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모든 대안을 놓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조차도 그들에겐 너무도 늦은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병영 곳곳에서 '양심수'의 행렬 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1천5백여 명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그들을 우리 곁으로 데려와야만 한다.
4. 관련자료
'군대'행이 아닌 '감옥'행으로 양심의 자유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알려지 면서 우리에게 '양심적 병역거부'란 더 이상 낮선 단어가 아니다. 이미 국제사 회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시민정치적권리에관한국제조약(자유권조약) 제18조 1 항 '사상·양심·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인권으로 인정하고 있다. 유엔인권위 원회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관련된 수차례의 결의안을 통해 △양심적인 병역거 부권을 정당한 인권으로 인정하고 △병역 복무 중에도 양심적인 병역거부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양심적인 병역거부권이 없는 국가에서 병역거부자 의 신념에 차별을 두지 않고 병역거부의 타당성을 판단할 기관을 설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유엔결의안에 찬성한 우리 정부 역시 시급히 양심적 병역거부 권 보장을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1.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이해
1) '양심적 병역거부권'의 보장을 위한 시론(조국)
2) 우리나라에서 여호와의증인 신자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하여(임종인)
3) 인권으로서의 양심적 병역거부권과 덧붙이는 얘기들(이대훈)
2.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인권위원회 결의안(1984년부터 2000년까지)
3. 양심적인 병역거부와 관련된 외국의 경험
1) 대만 대체역(사회역) 제도에 관한 경험 소개
2) 콜롬비아 양심적 징집거부 운동과정에 대한 고찰(Ricard Pinzon)
4. 양심적 병역거부에 관한 엠네스티 정책지침(국제앰네스티)
5.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기사 모음
◆ 자료문의 : 최은아(angelica-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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