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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인간답게 살 권리 - 하월곡동 이야기 취재후기

하월곡동 이야기…소개 못한 사연들

하월곡동 연재 기사를 끝낸 뒤,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면의 한계로 소개되지 못했던 사연들, 취재과정에서 느낀 소회들을 다시 담아보았다. [편집자주]


◎ 하월곡동 취재 방담회 ◎
·사회 : 최은아
·참석 : 김명수, 박세진, 박유민, 정보근, 허혜영


"골목에서 무작정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얘기할 힘조차 없다'라는 할머님의 말씀이 계속 마음에 남아요" 하월곡동 취재 기획부터 3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취재기자들의 뇌리 속에는 만났던 주민들의 모습이 선하다.

○세진 : 문제의 사슬이 꼬여있으니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답이 나오지 않아요.

○유민 : 돈 때문에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제약 당하는 현실이 씁쓸합니다.

○보근 :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사회권운동 하는 것이 배부른 소리 같았으나 하월곡동 취재를 하면서 여기서부터 사회권 운동이 출발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명수 : 사람들이 일을 안 해서, 개인이 부족해서, 노력하지 않아서 저렇게 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이 시스템에서 개인이 똑똑하면 부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연탄가스 가득찬 방의 아이들"

○명수 : 김 할아버지 옆집에 사는 할머니에게 50대 아들이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너무 연로하셔서 당신 몸을 가누는 것도 힘든데, 아들이 장독대에서 떨어져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방에만 누워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죠. 계속 누워 있으니까 욕창에 걸리는데도 적당한 치료를 못 받고 있죠. 한 때 자살을 시도하려 했으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적극적이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혜영 : 보건소에서 한 달에 한번 씩 오는데 회충약이랑 소화제 등을 놓고 간다고 해요. 정작 필요한 약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죠. 앞으로 철거가 시작되면 이사를 해야 하는데 아들이 아프기 때문에 아무 곳에서도 이들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세진 : 광진이네 집 취재를 가면 골목 입구에서 동생 영희가 저희들을 마중 나와 손을 잡고 집을 보여주었습니다. 조그만 방… 많은 슬픔이 고였습니다.

○혜영 : 광진이네 집은 연탄가스를 배출하는 기계가 고장나 연탄가스가 방안으로 가득 퍼집니다. 광진이네 집 골목에 들어섰을 때부터 연탄가스 냄새가 나는데 그 연탄가스가 가득 찬 방안에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무서웠습니다. 아이들에게 위험한 환경이 일상화된 셈이죠. 하루는 김밥집에 갔는데 영세공장의 노동자들이 밥을 먹으러 왔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인터뷰를 하려고 하는데 '안된다. 바로 들어가야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김밥집 아줌마가 '저사람들은 점심 15분 저녁 15분이야'라고 하더군요. 구두밑창을 몇 개 붙이느냐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기에 시간이 곧 돈이죠. 저임금이 사람을 기계처럼 만드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권리를 찾을 수 없다'는 말도 있지만, 하월곡동 사람들에게 권리란 딴 세상 이야기와 같았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무엇인지, 부당하다고 느낄 때 어떻게 이의를 제기하는지, 주민들에겐 정보가 없었다.


"주는 대로 받으라고 합니다"

○유민 : 광진이의 경우 장애수당을 받기 위해 검사비가 필요한데 검사비가 무려 11만원 정도 나왔어요. 누구한테 11만원은 하루 술값도 안 되는 금액이지만 광진이에게는 큰 돈이죠.절차의 복잡함과 비용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이런 제도가 있는데 왜 너희들이 못 찾아 먹느냐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명수 : '자포자기', '해도 안 된다'는 의식이 문제죠. 하지만 이런 의식이 생기기까지 많은 시련과 벽에 부딪쳐 좌절했던 경험들이 쌓였을 겁니다.

○세진 : 자기가 못 나서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지, 국가에서 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혜영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권자에서 탈락하는 등 뭔가 부당하다고 느끼면 우선 구청에 가서 이의신청을 해야합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구청 직원들조차 이 절차를 모릅니다. 그동안 요구해온 사람들도 없었다고 해요.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 행정소송으로 갈 수 있는데 이 절차 역시 거의 모릅니다. 일선 공무원들은 국가에서 도와주는 거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슨 권리가 있느냐고 말합니다. '주는 대로 받아라'는 의식이 아직까지 있죠.

○명수 : 사회권 영역의 법은 사람들의 삶에 별다른 보호막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법도 정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유민 : 일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도 문제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너만 똑똑하고 의지가 있다면 장학금 받고 공부 잘 하면 지원해준다는 식이죠. 실제로 가보면 어느 누구를 데려다 놓아도 그렇지 못한 환경이 많습니다. 네가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사회적 의식구조 자체가 이 사회를 계층화시킵니다. '너희들하고 우리는 다르다, 너희는 열심히 일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위계층으로 떨어진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이 정도 사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죠.


"무기력·외로움·상실감의 늪 … 자존을 회복하도록 해야 합니다"

○명수 : 하월곡동에 알콜중독자들이 많은데 이로 인해 가정폭력이 생기고 아내는 집을 나가죠. 또한 주거든 건강이든 물질적인 부족이 정신영역까지 옮아 삶을 뒤흔드는 것 같아요.

○유민 : 대부분 힘든 노동을 하는데 술로 잊을 수밖에 없으므로 알콜중독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보근 : 인간은 모두 사람답게 대우를 받고 싶은데 아무리 기술이 있다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용직 노동자는 사회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죠. 일상적으로 겪는 상실감과 좌절감이 클 것 같습니다.

○혜영 : 자기 삶이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없습니다. 의지도 없고 무기력하고 외로움, 고립감, 사회와의 단절감이 큽니다. 자활공동체 같은 곳이 마련되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재개발이 되면서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어디가면 일자리를 구한다든지 아이들이 공부방을 이용한다든지 등 지금은 낮은 수준이나마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데 재개발을 통해 그런 사회적 관계가 깨지는 거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정보접근도도 낮습니다. 자기권리를 알아야 침해당했을 때 구제받을 수 있는데 경제·시간적인 여건 때문에 절차에 접근할 수 없죠. 인터넷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정작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인터넷의 접근으로부터 배제됩니다. 그들에게 정보를 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라디오, 텔레비전 등 그들에게 자기권리와 관련된 정보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어야 합니다.


"빈곤은 불가피한 게 아닙니다"

○보근 : 예산이 문제입니다.

○혜영 : 국가가 의지는 있으나 돈이 없다면 지금처럼 그 이상의 주장을 못해야 하나요? 사실 그런 것을 강제해 내야 합니다. 강제할 수 있으려면 재정이 무엇에 우선적으로 쓰이는지 충분히 알고 그것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필수적인 생존권 확보에 우선적인 재정투여가 필요하고 국가의 의무로 강제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은아 : 정말 한정된 재정 내에서 예산을 집행해야하는 경우라면 가장 인권을 침해받기 쉬운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배치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권리에 중심을 둔 예산편성과 집행이 이뤄져야하죠. 단지 돈이 없다는 것으로 국가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은 궁색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혜영 : 돈이 없어서 지금처럼 참으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의 권리를 인권으로 보는 것이 아니죠.

○은아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인프라는 그들의 몫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중증장애인의 접근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계단을 이용하기가 어려운 노인·임산부 등이 그 시설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연대성' 이라는 가치는 어떤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한 것보다는 공동체의 삶의 질을 같이 향상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혜영 : 권리를 침해받기 쉬운 사람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의사결정구조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접 당사자들이 스스로의 문제에 참여해서 해결해나가는 방법이 모색되어야 합니다. 인권운동과 지역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주민들이 자기의 구체적인 문제를 권리로 이해하고 해결해 가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참여의 공간을 넓혀야 합니다.


에필로그

기자들은 처음 인터뷰를 시작할 때 주민들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컸다고 한다. 그 삶을 듣는 것 자체가 개입인데 과연 취재 이후 무책임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는 거다. 그러나 막상 주민들을 만나면서 그들이 마음을 쉽게 열어주고, 자신들의 삶을 들려주며, 심지어 격려해주는 말을 했을 때, 닫혀 있었던 마음이 열렸다고 한다.

"주민들은 인권운동 하는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뭔가 간접적으로 일을 할거다 라는 믿음으로 우리를 지켜봐 주었습니다."

연재를 마친 후 기자들은 자료집 만들기에 열심이다. 취재하면서 들었던 고민들, 기사를 쓰면서 참고했던 글들을 모아 하월곡동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