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철도노조 파업의 가장 핵심적 요구사항은 바로 부족한 현장 인력의 충원에 있다. 철도노동자들은 수많은 국민들이 이용하는 공공 교통수단인 철도가 안전하게 운행되고, 철도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수 있기 위해서는 최소한 2천2백여 명의 현장 인력이 추가로 확보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1인 승무제의 비현실성
철도청은 지난 2000년 '1인 승무 계획'에 따라 무려 1,481명이나 되는 인원의 감축을 결정한 바 있다. 그러나 철도청은 안전상의 위험 때문에 1인 승무제를 사실상 도입하지 못하고, 대신 그만큼의 인원을 기관사 외의 다른 분야에서 감축해 왔다.
철도노조는 1인 승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몇몇 외국과는 달리, 애초에 차량 내부의 안전장치 설비 수준이나 선로 및 신호체계의 여건 등 우리 철도의 상황을 고려할 때 1인 승무제는 도입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철도노조는 "현재 기관사와 보조업무를 수행하는 차장이 함께 승차하는 2인 승무제가 그대로 시행되고 있는 것은 철도청 스스로도 1인 승무제의 비현실성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으며, 실현되지도 못할 1인 승무 계획에 따라 무분별하게 감축된 1,481명의 인원을 다시 충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무분별한 인력감축으로 꼬리 무는 죽음들
그럼에도 철도청은 '공무원 총정원제'를 이유로 내세우며 지금껏 부족한 인력을 채우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전기, 선로, 차량정비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노동강도 강화와 산재 증가라는 짐을 고스란히 넘겨받아 왔다. 2001년 36명, 2002년 21명, 올해만 해도 벌써 11명이나 철도노동자들이 사고나 과로사로 죽어나가고 있는 현실은 철도노동자의 파멸적인 노동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실제 지난 3일 선로를 순회하다 과로사의 한 형태인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사망한 순천 전기사무소 소속의 고상순 씨(36세)도 무분별한 인력 감축에 따른 과로와 스트레스의 누적이 사망 원인이 된 경우다. 규정상으로는 2인 1조로 선로를 순회하도록 되어 있지만, 인력부족으로 혼자서 순회하다 아무도 없는 선로변에서 쓰러져 1시간 동안 사경을 헤매다 결국 죽음에 이른 고 씨의 안타까운 사례는 또다른 철도노동자들의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노동자·시민 생명 볼모로 달리는 철도
2000년 현재 한국 노동자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이 47.8시간인 데 반해, 철도노동자의 45% 이상을 차지하는 24시간 맞교대 근무자의 경우 주당 노동시간이 63시간에 달하는 현실도 무리한 인력 감축과 무관하지 않다. 열차 승무원이나 선로보수 노동자의 경우 주당 노동시간이 75시간이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이 철도노조의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과로사의 위험도 높아지고 이와 함께 시민의 생명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14일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대구기관차 승무사무소 소속 조달수 씨(45세). 이미 1인 승무제가 도입된 도시통근형 동차를 혼자서 운전해 왔던 조 씨는 올 1월부터 거의 휴일도 없이 일하다 과로사로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관사가 운전 중 과로사로 사망할 가능성도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을 담보로 철도가 달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아찔한 작업환경에 내몰린 선로·고압선 노동자들
더구나 철도청이 경영개선을 명목으로 감축해 온 인력에는 철도의 안전 운행을 위해 필수적인 열차 감시원도 포함돼 있어, 필요한 곳에 열차 감시원이 배치되지 않거나 열차 운행에 관한 지식이 없는 일용직 노동자로 자리가 대체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짧게는 5분, 기차가 다니지 않는 동안 선로 보수나 선로변 고압선 작업을 시급히 끝내야 하는 시설·전기 분야의 노동자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철도청이 추진해 온 외주용역화 역시 통합적 운행 시스템을 붕괴시켜 사고 다발을 낳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2월 15일 신태인에서 선로를 보수하던 외주노동자 7명이 열차에 치여 그 자리에 숨진 끔찍한 사고가 대표적 경우.
철도노조가 인력 충원과 외주용역화 철회를 요구하는 데에는 이러한 절박한 사정이 깔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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