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다의 숙제
지난해 1월 어느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에바다 농아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농아원을 사회복지시설의 모범으로 만들겠다는 열의를 가진 새로운 이사진들과 원장, 교장들도 그 문턱을 넘어설 수가 없었다. 옛 비리재단 쪽 사람들은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며,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경찰은 강 건너 불 보듯 뒷짐 지고 서 있는가 하면, 되레 합법적인 이사진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나 역시 빼곡이 기록한 기자수첩을 옛 재단 쪽 사람들에게 순간 강탈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 날,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 에바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평택 경찰, 교육청, 시청 등과 구 비리재단의 유착의 뿌리는 깊고도 깊어, 구 비리재단의 농아원 불법 점거 상태는 끝날 줄을 몰랐다. 복지시설을 돈벌이 수단이자 사유재산처럼 여기는 이들에게, 농아원은 절대 놓칠 수 없는 무언가인 모양이었다.
그러던 지난 5월 28일, 에바다 농아원의 문이 마침내 열렸다. 7년 간의 비리와 인권유린으로 얼룩진 에바다 농아원의 잠긴 문을 열어 젖힌 것은 지역의 노동자, 학생들과 에바다 복지회의 민주적인 이사진들이었다. 이제서야 에바다 복지회 정상화의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안심할 땐 아니다. 최성창 전 비리재단의 이사장이 평택 경찰의 비호 속에 농아원 내 기숙사에 기거하며 마지막 '버티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가 어린 농아원생들을 기숙사에서 '볼모'처럼 잡고 있단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비리재단 쪽은 번번이 농아원생들과 일부 졸업생들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패막이로 이용해왔다. 이리하여, 이 아이들은 함께 공부했던 해아래집의 친구들을, 선생님을, 새로운 이사진들을 불신하고 때론 폭력까지 휘두를 것을 강요당했다. 최근에는 두 달 간 수업에도 참여하지 못 해, 교육권까지 침해당하고 있다. 이들 청각장애 아이들을 폭력으로 내몰며 아이로서 밝게 자랄 기회마저 박탈하는 것은 현재 구 비리재단이 벌이는 인권침해의 정점을 이룬다.
구 비리재단의 수명은 이제 사실상 거의 끝났다. 최성창 전 이사장이 불법 점거 상태를 끝내고 에바다에서 나가는 날이 바로 그 날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에바다 복지회가 풀어가야 할 숙제는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폭력에 길들여진 일부 청각장애 아이들 마음에 가로 새겨진 상처와 어두움을 치유하는 일은 가장 우선적인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청각 장애 아동들에게 인간다운 삶의 토대를 제공하는 복지시설이자 교육시설로 새로이 거듭나야 함은 물론이다. 좀 더 욕심을 내자면, 앞으로의 에바다 복지회의 민주적 운영이, 비리와 인권유린의 몸살을 앓고 있는 다른 사회복지 시설들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어주는 동시에, 모든 사회복지시설들에 대한 총 점검의 계기를 마련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모두, 에바다의 정상화를 위해 싸워 온 사람들은 벌써부터 꿈꾸어 온 것들일 테다.
(이주영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