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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연재] 국가인권위원회 들여다보기 : 일률적 지문날인제도

외국인에는 제한 요구, 내국인에는 "입장없다"?

외국인 지문날인제도 관련해 법무부가 법 개정작업에 착수하자,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이에 대한 의견을 제출했다. 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을 규정하고 있는 법 조항은 출입국관리법 제38조 1항(아래 지문조항).

법무부는 이 지문조항의 1호를 삭제해 등록외국인에 대한 지문날인제도의 폐지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지난 3일 법제처에 제출했다. 지문조항 1호는 '1년 이상 체류하는 20세 이상의 외국인으로서 외국인등록을 필한 자'에 대해서 일률적으로 지문날인을 강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인권침해 논란이 있는 지문날인제도를 등록외국인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폐지하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또 인권위는 지문조항 2∼4호까지 대폭 손질해, 강제퇴거명령을 받거나 다른 법률을 위반해 수사를 받고 있는 외국인만을 지문날인 대상자로 명확히 특정하라고 주문했다. 현 지문조항 2∼4호는 △대한민국의 안전이나 이익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자 등 추상적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 자의적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어 '입법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 인권위의 입장이다.

명확성의 원칙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모든 입법에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원리다. 이처럼 외국인 지문날인제도에 대해 인권위가 명확성의 원칙을 요구한 것은 외국인에 대해 일률적 혹은 자의적으로 지문날인을 강제하는 것은 인권침해이므로, 부득이하게 지문날인이 필요한 외국인을 '명확히' 특정하라는 주문으로 해석돼야 한다.

이에 따르면 만17세 이상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강제되고 있는 내국인 지문날인제도 역시 당연히 인권침해다. 인권위도 결정문에서 "외국인의 지문날인제도(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 프라이버시권 등과 관련되어" 있고, "외국인에 대해 지문날인이라는 불이익을 부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위는 이러한 해석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이번 결정의 빛을 바랬다. 인권위 법제개선담당관실 장영아 씨는 "이번 결정은 (지문날인제도의 인권침해성이 아니라) 법치국가의 원리인 명확성 원칙에 근거한 것"이라며, "현재 인권위는 지문날인제도 자체에 대해 아무런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외국인 지문날인제도에 대해서는 명확성의 원칙을 요구한 인권위가 내국인 지문날인제도 자체에 대해 입장이 없다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다.

99년 헌법소원, 02년 열손가락 지문원지 반환소송, 그리고 지난달 인권위 진정. 이처럼 전국민 지문날인제도를 폐지하라는 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마당에 인권위는 더 이상 입장표명을 유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