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나서 노동자들의 파업을 강제로 중지시키는 '긴급조치' 발포가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30일 정부는 국무총리 주재로 국정현안 정책조정회의를 열고 현대자동차 파업에 대한 긴급조정권 발동을 검토하기로 했다. 다행히 이튿날 청와대가 이 방침을 재검토하기로 했으나, 아직까지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사측의 교섭 회피나 위장 직장폐쇄, 부당해고와 노조탄압에는 모르쇠로, 거북이 걸음으로 일관해온 정부가 노동자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선택한 파업에 대해서는 이리도 신속히 '강제 중지'를 검토하고 나서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현행 노동관계법의 긴급조정 조항은 '직권중재' 조항과 함께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들의 정당한 기본권을 침해해온 대표적 독소조항이다. 다만 63년 도입된 이래 두 차례의 발동만 있었기에 사회적 지탄의 대상에서 잠시 멀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정부가 사문화되다사피 한 '긴급조정권이라는 구시대의 악령'을 다시금 불러내고자 한다는 사실은 우려를 넘어 분노마저 자아낸다.
정부는 현대차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낳고 있다며 그 필요성을 설파한다. 하지만 지금 파업을 장기화시키고 있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정당한 요구를 내걸고 있는 노조'가 아니라 바로 '과다한 욕심으로 현대차에 부당한 압박을 가하고 있는 전경련'에 있다. 현대차에서 '노동조건의 후퇴 없는 주5일근무제 도입'이 합의될 경우 다른 사업장에서도 같은 요구가 거세어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바로 전경련이 현대차의 노사합의를 방해하는 이유다. 경제가 그리도 걱정된다면 전경련의 압박부터 중지시키고 볼 일이다.
긴급조정권이 설령 발동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검토가 있었다는 것만으로 이미 정부의 '부당한 조정'은 시작된 것에 다름없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는 파업 자체를 백안시하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파업 중단을 촉구하는 여론몰이를 낳아 결국 노조의 주장을 위축시킬 수 있기에 그러하다.
지난 5월 정부는 국가기간산업 노동자들에게 업무복귀를 명령하고 강제노동을 시킬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검토한 바 있다. 또 최근에는 여야 국회의원들이 전산시설 노동자들의 파업을 원천봉쇄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렇듯 초헌법적 발상으로 노동자들의 정당한 기본권을 제한하여 재계의 비위를 맞추려는 일련의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 2390호
- 2003-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