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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불안과 분노에 떠는 이주노동자들

<현장> 합법화 시한 한 달 앞둔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다

"한국인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적은 돈 받고 더 힘들게 일하며 버텨왔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니 말이 됩니까?" "우리가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었다는 걸, 우리도 이웃이라는 걸 인정해 주세요."

지난달 28일 오후 경기도 일산에서 서울경인지역 평등노조 이주지부(아래 이주지부) 주최로 열린 '단속추방분쇄 노동비자쟁취 일산지역 투쟁 결의대회'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은 여기저기서 분노를 토해냈다.

7월 31일 국회를 통과해 8월 16일 공포된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 특례조항에 따라 지난달 1일부터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의 합법화를 위한 등록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곳곳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3월 31일을 기준으로 체류기간이 4년이 넘은 20여만 명을 비롯해 정부의 '선택적 합법화' 대상에서 제외된 이주노동자들은 내달 20일경 이후 대거 추방될 위험에 내몰려 있다.


강제추방 앞두고 애타는 심정들

"이주노동자들이 소규모로 고용된 사업장에서는 최근 계속해서 4년 넘은 사람들을 해고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일해 온 숙련 노동자들을 왜 추방하는지 모르겠어요." 경기도 안산에 거주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출신 쇼학 씨는 "친구들 중에 남편은 체류한 지 4년이 넘고 아내는 3년이 안돼 11월 15일 자진출국기간까지 생이별해야 할 처지에 놓인 부부도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서울 이태원 이슬람 사원에서 만난 파키스탄 출신 라히 씨는 대화를 나누는 내내 불안한 눈길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2001년부터 불법체류하고 있는 라히 씨는 의자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지난해 협심증에 걸려 일자리를 식당으로 옮겼다. 가족의 생계 때문에 몸이 아파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라히 씨는 이달 말까지 다른 업종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쫓겨날 처지다. 국적을 불문하고 합법화가 허용되는 업종은 300인 미만 중소제조업과 연근해어업, 농축산업뿐이고, 음식점업 등 서비스분야 6개와 건설업은 외국국적의 동포에게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3월 31일 이후 신규로 발생한 불법체류자들도 합법화에서 제외되긴 마찬가지. 브로커들에게 500백만원이나 주고 한국에 왔다는 모로코인 부할리 씨는 4월 2일자로 불법체류자가 돼 자진출국 기간이 끝나면 추방될 처지에 놓였다. 이주노동자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윤성봉 노무사는 "현지 브로커들에게 속아 새로운 제도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채 최근 입국한 이주노동자들도 많다"면서 "방글라데시의 경우 대개 브로커에게 1천만을 주고 들어오는데, 이 금액은 방글라데시에서 평생을 벌어도 모으기 힘든 돈"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이주지부를 비롯한 이주노동자 관련 인권단체들은 모든 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하고 최소 5년간의 체류와 취업을 보장하는 노동비자의 발급을 요구하고 있다.


사업주들 담합해 노동조건 후퇴시켜

다행히 합법화 대상에 포함된 노동자들도 지금보다 더 열악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여야 하거나 아니면 쫓겨나야 할 형편에 놓여있다. 등록 절차를 밟기 위해서는 고용주가 발급하는 고용확인신고서와 사업자등록증, 표준근로계약서, 기간이 끝나면 자진 출국하겠다는 서약서 등의 자료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를 노동조건을 후퇴시키는 계기로 악용하는 사업주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주지부 선전국장 쏘냐 씨는 "새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임금 삭감, 휴일수당 폐지, 퇴직금 폐지 등을 요구하는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용산 나눔의집 최준기 신부도 "120만원을 받던 이주노동자가 임금이 절반이나 깎여 새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도 있었다"며 등록기간이 끝나는 10월말이 되면 이와 같은 사례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 우려했다. 기간 내에 등록하지 않으면 강제추방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이 후퇴한 노동조건이라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

최준기 신부는 또 "사업주가 이주노동자의 신원을 보증하도록 하는 체계여서 사업주들이 필요한 서류 발급을 꺼리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사업자등록증조차 없는 소규모 영세 사업장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의 경우는 등록 자체가 불가능한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재입국 보장 없어 출국 힘들어"

일단 출국했다 재입국해야 하는 3년 이상 4년 미만 체류자들도 사업주들이 고용확인신고서 발급을 꺼려 등록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이주노동자들 자신도 재입국된다는 보장도 없어 등록을 꺼리고 있다. 또다시 불법체류자로 남는 길을 선택하고 있는 것. 9월 30일 현재 합법화 대상 23만여 명(노동부 집계) 가운데 단 10% 등록률을 보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현실에서 비롯된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와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아 1년 단위의 노예생활을 강요한다는 고용허가제 자체의 문제점은 접어두고, 이 제도가 정착되는 과정에서도 이렇게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은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