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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손상열의 인권이야기

탈'안보론'적 사고와 실천

전통적으로 안보란 "영토 혹은 그 영토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국가는 이를 위해 군사적 수단을 포함해 여러 가지 수단들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정의와는 달리, 안보론은 매우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의미 있는 사회적 논쟁이나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하더라도 정부가 '안보' 혹은 '국익'이라는 말만 들고 나오면, 사회적 논쟁과 투쟁은 여지없이 격파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정치세력들 또한 국익이나 국가안보에 대해 어떤 나름의 답변을 갖고 있지 못하면 책임성 없는 정치주체로 치부되곤 한다.

안보론의 효과는 올 초 파병반대 투쟁에서도 드러났다. 미국의 이라크전쟁에는 반대하지만, 한국군 파병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시민들의 이중적 태도는 어디에서 기인했는가? 나는 당시 불거져나온 북핵문제의 해결을 운운하며 한반도 안보를 위해서는 한미동맹과 파병이 불가피하다고 설파했던 정부의 안보론이 먹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전쟁은 반대하지만 파병에는 찬성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론조사에서 그 이유를 '안보'와 '국익'에서 찾은 바 있다.

안보론은 안보결정권자로서 국가를 강조하고, 그 수단으로서는 군사력을 강조한다. 이것이 안보론이 국가주의나 군사주의와 서로 공명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또한 안보론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특정한 형태로 재구성하는 젠더 위계체계와도 공명한다. 예를 들어, 가부장제가 형성시키는 '사내다움'이라는 남성성은 안보론이 설파하는 '전쟁영웅의 이미지'나 '어머니와 애인을 보호하기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남성전사'의 이미지와 매우 친화적이다.

나아가 안보론은 이 사회에 뿌리박혀 있는 여러 차별의식과도 공명할 수밖에 없다. 안보론의 논리 회로는 나와 타자의 분리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아닌 타자의 존재와 활동을 위협적인 내지 공포스러운 무엇으로 부각시킨다. 그리하여 위협과 공포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결국 힘과 강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안보론의 논리 회로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들을 빗대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논리, 이주노동자들을 빗대어 시민과 비시민을 나누는 논리가 안보론의 논리 회로와 닮아있다.

'국익'과 '안보' 논리로 치장된 이라크 추가 파병을 대면하고 있는 우리에게, 탈'안보론'적 실천을 기획하는 일은 반전운동의 또 하나의 과제로 사고되어야 한다. 물론 그 첫걸음은 '안전'을 그들이 아닌 우리와 이라크 민중의 입장에서 다시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일상 속에 뿌리박힌 여러 안보론의 논리 회로들을 해체하는 인권운동이 함께 해야 한다.

(손상열 님은 평화인권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