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사 정신질환 … "업무 중압감이 부른 인재"
최근 근로복지공단이 서울도시철도공사(아래 도시철도) 기관사의 스트레스성 공황장애를 업무상 재해로 판정한 것이 알려지면서 기관사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조건의 실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12일 만난 도시철도노조 정운교 노동보건국장은 "현재까지 스트레스성 정신질환 판정을 받은 기관사만 12명에 이르고, 지난해 8월에는 2명의 젊은 기관사가 적응장애, 정신분열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비통하게 전했다. 정 국장은 "이들 모두 입사할 때 받는 정신건강검사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사람들"임을 강조하면서,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이 많은 기관사들을 정신질환으로 내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하철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상태는 드러난 사례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지난해 6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인제대가 도시철도 노동자 천2백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도시철도 노동자의 45.2%가 우울·불안·의욕상실 등의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80.6%가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 특히 전체의 40%가 넘는 기관사들이 고위험 스트레스군으로 나타났다.
1인 승무제가 정신질환 불러
기관사들의 정신건강이 이처럼 위태로워진 데에는 1인 승무제도와 만성적인 인력부족이 주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 연구원은 "강한 소음과 사고에 대한 긴장감 속에서 어두운 터널을 달려야 하는 기관사의 고유 업무상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현재 기관사들의 심각한 건강 문제는 1인 승무제도 등에 따른 과중한 업무량이 불러온 인재"라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이대목동병원 산업의학과 김정연 의사도 "1인 승무제도로 인해 기관사들이 운행사고 등에 대한 책임을 혼자 부담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밀폐된 지하공간에서 혼자 고립된 상태로 장시간 근무함으로써 심각한 스트레스성 질환이 유발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1인 승무제도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목소리는 높다. 윤성호 기관사는 "빈번한 출입문 사고 등 일단 사고가 나면 사령실에 보고하고, 승무일지에 기록하고, 객실에 방송을 하고, 운전실과 사고현장을 뛰어다니며 사령실의 지시를 받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의 기관사가 10분 이내에 끝내야 열차 지연의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때문에 '분, 초'를 다투는 열차 운행에서 기관사들의 긴장감과 불안감은 그만큼 더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승객을 친 사고의 경우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 상태에서 시신 수습을 한 후 서둘러 교대 근무지까지 운행을 계속해야 하는 심리적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살인적 인력감축, 노동자 건강 외면
1인 승무제도에 더한 만성적인 인력부족은 장시간, 고강도 노동을 강제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윤 기관사는 "기관사들은 보통 한 주에 주간근무 3번, 야간근무 2번을 번갈아 하는데 작업장 체류시간이 주간에는 보통 10시간, 야간에는 14시간 정도"라며, "여유인력이 없어 병가를 내기도 어렵다"고 토로한다. 더구나 "공사 측이 휴직이나 퇴직으로 생긴 빈자리에 제대로 충원을 하지 않아 한 달에 4일 반나절인 휴일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심리적 중압감과 불안이 제때 해소될 리 없다.
실제로 도시철도공사는 지난 96년 개통된 이래 지속적인 구간 확장에도 불구하고, 99년에는 오히려 1천7백여 명의 인력을 감축시키는 등 노동자 1인당 담당 업무량을 가중시켜왔다. 이에 더해 2002년 12월에는 겨우 백 명의 충원으로 야간 1시간 연장 운행이 실시되었다. 정운교 안전보건국장은 "비용절감을 통한 이윤 극대화라는 도시철도공사의 경영 방침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노동자의 건강은 물론 시민의 안전마저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며, 1인 승무제도 폐지와 노동시간 단축을 강력히 주장했다.
도시철도노조, 국가인권위에 질의
지난 10일 도시철도 노조는 기관사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관련,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 여부를 묻는 질의서를 제출했다. 그 동안 노동권 등 사회권 영역에 무관심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국가인권위원회가 두 젊은 기관사의 목숨을 앗아간 노동조건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