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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조이여울의 인권이야기

'술 따르기'와 여성노동권

술자리에서 교감이 여교사에게 술을 따르도록 요구한 행위가 '성희롱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개념이 자리 잡혀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건을 보니, 아주 전형적인 풍경이다. 모 초등학교 회식자리에서 교장이 교사들에게 술을 죽 돌렸고, 교감이 '여선생님'들을 지명하며 '교장선생님'에게 술을 따르라고 한 것. 교사들은 거부했고 교감은 재차 요구했다. 여성부 남녀차별위원회는 교사들이 진정한 이 사건에 대해 직장 내 성희롱 판정을 내렸다. 그런데 며칠 전 서울행정법원 제2부는 성희롱 결정처분 취소판결을 내린 것이다.

행정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으로부터 술을 받았으면 답례로 윗사람에게 술을 권하는 것이 술자리에서 지켜야 할 예절"이고, "여교사들에게 술을 권하도록 한 원고의 말에는 성적인 의미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돼있다. 덧붙여 "성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적인 사람이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보았다.

회식자리에서 '여성'직원으로 하여금 '상사'에게 술을 따르라고 하는 것. 이런 행위는 남성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 있지만, 수많은 여성노동자들이 호소하고 있는 '고통'이다. 이는 수직적인 권력관계 하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강요' 받는 일이며, 노동현장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이 결코 남성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일이다. 즉 직장 내 성희롱은 여성노동자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범죄이다. 때문에 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법에서 성희롱 금지조항을 두고 있다.

그런데 행정법원은 '술자리 예절'을 언급하며, 여교사들이 처한 상황을 가뿐하게 미화시켜 버렸다. 직장상사가 미리 술을 주었는지 안 주었는지가 중요한가? '내 술 받고, 네 술 받자'식의 성희롱은 늘 있어왔다. 교감이 '여 선생님'들에게 술을 따르라고 한 것은 교사들이 성적 굴욕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법원이 교감의 언행에 '성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느냐'의 여부를 중요하게 판단한 것도 황당한 일이다. 성희롱은 가해자의 행위에 성적 의도가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성적인 의미'란 무엇인가. "나랑 자자"고 해야 성적인 의미가 포함된 것인가? 여성들이 느끼는 '성적 굴욕감'이란 성관계에만 국한된 것인가? 재판부의 법적 지식이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지긋지긋하게 따라다니는 성 역할 고정관념, 여자는 '사무실의 꽃'이어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몸가짐과 행동을 하도록 요구받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여성들에게 '성적 굴욕감'을 주는 것이다.

'예절'과 '사회통념'을 언급하며 여성에게 강요되는 술 따르기 문화(성차별, 성희롱 문화)를 감싸주고, 한 술 더 떠 여성노동자들이 느낀 굴욕감마저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일축한 이번 행정법원의 판결은 명백히 오판이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법원의 판결로 인해 평등한 노동권을 쟁취하려는 수많은 여성들의 노력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조이여울 님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 편집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