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차 유엔 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둘째 주 일정을 마무리했다. 예정대로 인권위는 자결권(의제항목5), 인종주의와 인종차별(의제항목6), 발전권(의제항목7) 등 국제인권의 기본 토대가 되는 권리를 다루었고 팔레스타인(의제항목 8)에 이어 나라별 인권상황(의제항목 9)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번 주에 발생한 두 사건으로 '순탄하게' 진행되던 인권위에 예상보다 일찍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은 22일 이스라엘의 미사일 공격으로 팔레스타인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세이크 야흐메드 야신의 죽음이고, 두 번째 사건은 미국정부의 대 중국 인권 결의안 제출 결정이다. 두 사건이 인권위의 전체 흐름과 다른 의제항목의 논의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 정부 대표단과 NGO 모두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며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표적암살로 비난받는 이스라엘
인권위 개막 직전 마드리드에서 발생한 테러사건이 '민간단체에 의한 테러'였다면 야신의 죽음은 '국가에 의한 테러'라는 점에서 충격은 매우 컸다. 그 심각성으로 인해 인권위는 24일 특별회의(special sitting)를 개최하여 이 문제를 다룬 후,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결의안(E/CN.4/2004/L.4)을 다수결로 채택하였다. 이 결의안에서 미국과 호주는 반대했고, 유럽연합 소속 국가 및 한국과 일본은 기권했다. 그러나 나머지 다수 국가가 찬성하여 이 결의안은 찬성 31, 반대 2, 기권 18로 통과됐다. 거의 동시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된 이스
라엘 비난 결의안은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 이스라엘에 대한 인권위의 비판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영국, 폴란드, 이탈리아를 비롯해 이라크 침공에서 미국을 지지했던 상당수 유럽 국가들이 미국과 입장을 달리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위상 약화와 '고립'에 기여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 중국인권 결의안 2년만에 제기
미국의 대 중국 결의안은 89년 천안문 사건 이래 인권위 '연례행사'로 자리잡아왔다. 그러나 지난 2년간 결의안이 제출되지 않았고, 인권위 개막 직전 일부 정치범을 석방하고 개정된 중국 헌법에 인권이 명시적으로 언급되는 등 나름대로 가시적인 인권개선이 있어 중국정부는 미국이 더 이상 중국인권 결의안을 제출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일부에서도 비슷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중국 정부는 미국의 결정에 대해 '실망과 분노'의 반응을 보였다.
중국인권 결의안은 단순히 중국이라는 한 국가의 인권 또는 미국과 중국의 힘 겨루기를 넘어서는 정치적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중국은 '반미' 또는 '반서양'을 기치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이슬람 국가에게 연대와 결속을 적극적으로 강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중국인권에 대해 '부드러운 비판'의 입장을 취하고 있어 과거처럼 중국인권 결의안에 대한 미국과 유럽연합의 공조가 이루어질지는 미지수이다.
NGO들은 여전히 열악한 중국의 인권현실 그리고 국제적인 인권감시에 성역이 없다는 원칙에 따라 중국인권 결의안을 찬성하지만 순수한 인권에 대한 관심보다는 패권적 힘 겨루기 형태로 변질될 부정적 여파를 우려하고 있다. 특히 일부 NGO는 유엔 안보리의 명시적 동의 없이 이라크 침공과 이에 따른 무고한 민간인 학살로 유엔 헌장과 국제법을 위반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미국이 과연 그러한 결의안을 주도할 명분과 정당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표명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인권위 초반에 유엔으로부터 인권침해를 이유로 비판을 받아온 나라들을 대변해 '나라별 인권문제를 다루는 의제항목 9를 폐지해야 한다' 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의 파장이 전체 국제인권 제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했다. 특히 국제 NGO들은 국제적인 압력을 통한 효과적인 인권개선 수단으로 활용되어온 이 제도가 협애한 국익 및 주권의 논리와 강대국의 패권적 힘겨루기로 축소 또는 폐지될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중국 결의안에 국제 언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여성폭력, 에이즈환자, 원주민 인권, 초국적기업 등 여전히 중요하지만 덜 '정치적인' 이슈들에 대해 관심이 축소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정부, 북한인권 우회적 발언
한국정부는 나라별 인권상황(의제항목9)에서 이번 회기 두 번째 공식 발언을 하였다. 한국정부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과 북미의 인권상황을 개관하고 나서 북한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공개처형, 노동교화소, 식량 자유 또는 구호를 위해 이웃나라로 탈출하는 사람들의 인권이 국제법에 따라 존중되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북한 인권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명하였다.
한편, 북한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야말로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이자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라고 주장하고 나서 이러한 문제를 직접 다루지 못하고 작고 힘없는 나라를 다루는 유럽연합의 이중잣대를 강도 높게 비판하였다. 한국과 북한 정부의 의제항목 9 발언문(영문)은 www.unchr.info 의 초기화면 우측 agenda item 9 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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