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사무소 지문날인 관행 여전
신속하고 정확한 행정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아래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 아무렇지 않게 침해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 12월 29일 전남 순천시 왕조1동에 사는 김종남 씨는 부인과 함께 집 근처 동사무소를 방문했다. 각자의 인감증명을 발급 받으려던 김 씨 부부는 그곳에서 황당한 일을 겪어야만 했다. 김 씨에 따르면, 인감증명 발급 과정에서 동사무소 직원이 강제로 지문날인을 하게 했다는 것.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동사무소 직원이 손가락을 잡아끌어서 지문날인을 했다"는 것이 김 씨의 주장이다. 이에 김 씨는 지문날인 자체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며 관련법규를 제시해 줄 것과 동장의 사과를 요구했지만 동사무소 측은 이를 묵살하며 김 씨를 동사무소 밖으로 밀쳐냈다.
이에 대해 해당 동사무소 관계자는 "업무 마감시간에 맞춰 급하게 인감증명 발급신청을 해기 때문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서 지문을 찍게 되었지만, 강제는 아니었다"고 부인하며, 자신은 시행령대로 했을 뿐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김 씨는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통해 본인임을 확인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지문날인을 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고 성토했다. 현행 인감증명법 시행령에 의하면 인감증명 발급을 받기 위해서는 서명이나 무인(지장)을 하도록 되어있다. 즉, 지문날인 외에 본인의 서명으로도 인감증명 발급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일선 관공서에서 이를 제대로 고지해주지 않을 뿐 아니라, 관행상 모든 민원인들에게 지문날인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동사무소 관계자는 "요즘 성형수술 때문에 얼굴변형이 많이 되어서 주민등록증으로 개인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 아니냐"며 지문날인을 당연하게 생각해 생체정보 수집에 대한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김 씨는 다음날 상급기관인 순천시청 민원실에도 이에 대해 항의했으나 이 역시 무시당해 행정편의적인 발상 아래 국민의 신체의 자유가 짓밟히고 있는 실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지문날인반대연대 윤현식 활동가는 "지문으로 개개인의 신원을 확인하려 는 발상 자체가 문제"라며 아울러 "국민들이 사적인 권리를 행사하는데 인감을 떼어야 하고 지문을 통해 국가에 확인을 받아야 하는 시스템 자체가 강력한 국민통제의 수단"이라고 비판했다. 도장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지문이라는 민감한 개인 정보를 제공하며 개인의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것 자체가 본말이 전도된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 "전국민의 지문을 왜 국가가 수집해야 하는지, 그러한 시스템 구축을 통해 결국 확인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부당한 지문날인에 대한 항의로 불편을 겪은 김 씨는 "모든 사람을 범죄자로 취급하는 주민등록제와 지문날인제도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권침해 현실에 대해 정당한 것 마냥 민원인을 다그치는 일선 공무원들의 태도에서 서글픔을 느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