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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불감증에 또다시 아연실색

아부그라이브 사건 변호인의 궤변

현재 미국 텍사스 군사법정에서는 아부그라이브 고문 사건을 규명하는 재판이 진행중이다. 그러나 11일 외신을 통해 전해진 변호인의 변론은 그 사건만큼이나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찰스 그레이너 상병을 기소한 군검찰이 '인간 피라미드를 쌓는 수감자들'의 사진을 증거로 제시하자 가이 워맥 변호사는 "치어리더들이 늘 하는 일이라며 이들이 1년에 (포로들이 피라미드를 쌓은 횟수인) 6∼8번만 이러겠느냐"는 기가 막힌 논리를 폈다. 또 알몸의 수감자가 목에 쇠사슬이 채워져 끌려 다니는 사진에 대해서도 "부모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띠를 묵는 것과 같다"며 이는 "엉망진창인 수용소를 통제하기 위한 유효한 방법"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언론의 빈축을 산 이 궤변은 그러나 한 번의 '해프닝'으로 넘겨버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평화인권연대 손상열 활동가는 "9.11 이후 반인권적 발언이나 '애국자법'과 같은 정책들로 인해 이와 같은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 역시 "전반적인 미국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고 지적하며 "9.11 이후 미국의 인권 기준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으며 이번 발언은 이를 반영한 한 예"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아부그라이브 사건 이후에도 이에 책임이 있는 국방부의 명령체계가 그대로 용인되고 있고, (전쟁 범죄자인)부시가 재신임 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제국의 오만이 극치를 달리고 있다"고 분노하는 오두희 활동가는 "그것이 바로 미국 인권의 수준이며 이는 미국이 이미 파시즘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일갈했다. 제네바 협약 등 국제 인권 기준을 짓밟고 있는 미국의 만행에 대해 민중적 대응과 통제 장치 마련의 중요성을 다시 절감한다는 오 활동가는 "부시 재취임 반대 운동을 미국의 도덕성 타락과 인권불감증을 규탄하는 운동으로 확대시켜야 할 것"이라고 앞으로의 운동 방향을 내다보기도 했다. 전범민중재판 기소인으로 참여했던 안병수 씨는 "변호인의 논리가 얼마나 박약한지 실소할 뿐"이라고 평했다. 그는 또한 "아부그라이브 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미국의 범죄행위는 미국 법정에서 가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며 "아직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할 수 없지만 민중재판 같은 상징적인 법정이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평화운동의 지속을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바그다드에서 열린 미군사재판에서 프레데릭 부사관이 8년형을 선고받기도 했지만 이는 관타나모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지휘계통으로 저질러지는 조직적 범죄에 비교해 볼 때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문제는 미국이 고문방지협약이나 국제형사재판소 등 국제인권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고, 제 멋대로 독주하고 있다는 것. 앞으로의 재판과정에서 아부그라이브 사건이 '인권'의 이름으로 심판 받을 수 있을지를 기대하기 힘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