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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운동을 키우는 새로운 실험> ③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방방곡곡 울리는 평화의 몸짓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은 이라크 전쟁반대, 한국군 파병철회, 평택 미군기지 총집결 반대의 목소리를 전하며 2004년 한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사람을 불러모아 얘기를 듣게 하기보다는 사람이 있는 곳을 찾아가려 했고, 인터넷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얘기하는 것보다는 직접 대면하고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유랑단은 2003년 겨울, 서울을 중심으로 파병철회를 위한 거리공연을 시작으로 해서 2004년 5월29일 벌어진 평택 평화축제를 알리기 위한 전국순회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7월에는 전국도보행진을 전쟁피해자들과 함께 했고, 파병철회를 요구하며 오랜 기간 단식을 한 김재복, 박기범 님과 함께 철군과 종전을 위한 단식순례를 9월 내내 진행했다. 이어 2004년 마지막 일정으로 전범민중재판 기소인을 모집하며 전국을 돌았다.

유랑단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는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유랑단은 거리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북으로 난타도 치고 퍼포먼스도 했다. 이 거리공연이라는 것이 얼핏보면 그럴싸하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공연경험이 전무한 아마추어들의 황당한(?) 몸짓이기도 했다. 하지만 횟수가 거듭할수록 나름대로 노하우라는 것이 쌓이면서 어떤 것이 좋은 표현인지에 대해서도 느끼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잘한 공연이 아니라 '잘 표현한' 공연이다. 투박하고 어설퍼도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느낌이 잘 드러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사람들은 집회나 문화제에 전문 공연자를 불러오려 하지만, 정작 그 문제에 대해 고민이 가장 많은 사람 중 하나인 자기자신이 스스로 표현을 해보려는 노력은 잘하지 않는다. 유랑단은 뛰어난 공연자 열 명을 부르는 것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하나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보다 중요한 일임을 유랑을 하면서 거듭 깨달았다.

유랑단이 주대상으로 하는 사람은 미디어를 거쳐서 만들어진 정지된 장면을 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거리에서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다. 현장에 있는 일반 사람들에게 직접 호소하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은유적인 표현을 더 선호하게 된다. 파병에 반대한다고 해서 모든 곳에 '파병반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메시지가 강렬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시작된 퍼포먼스는 군인분장을 한 연기자가 '군인은 집에 가고 싶다'는 글씨의 발판을 놓고 사람들 한가운데 동상처럼 서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글씨와 분장 외에 아무런 설명이 없는 퍼포먼스에 사람들이 모이고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사람이야, 마네킹이야?"부터 시작해서 "군인이 왜 집에 가자는 거야?"라는 얘기까지. 만일 모든 것을 미리 설명해 버렸다면 사람들은 메시지만 보고 그냥 자기 갈 길을 가버렸을 것이다. 표현하는 이와 구경하는 이 사이에 인식의 간격을 주고 그 차이를 좁힐 수 있는 여지를 주면서 소통의 씨앗을 심는 방법이 바로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실제로 길거리에 나서서 아마추어 공연자가 사람들의 발길을 잡고 시선을 모으는 것은 쉽지 않다. 유랑단 역시 거리에 나가서 사람들과 같이 하고 싶었지만, 냉담한 반응과 차가운 시선에 상처 입을 때가 훨씬 더 많았다. 하지만 유랑단이 원하는 것은 스스로 뛰어난 공연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거기 서있는 사람이 이 어설픈 몸짓에 동행이 되길, 그래서 자기가 느끼는 이 모든 문제들을 몸으로 풀어내길, 그리고 우리의 흥이 거리를 뒤덮어 버리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의식주 문제에 있어 대안을 찾듯이 표현에서도 대안적 방식이 필요하다. '문화적 접근'이란 전문 공연인의 공연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느낌, 마음을 문화적으로 표현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것은 재능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연습해야 하는 것. 부족했지만, 지난 1년간의 유랑단의 활동은 '대안적 표현'을 위한 작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고철 님은 지난 한해동안 평화유랑단에서 활동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