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획기적 신기술 또는 새로운 감시기술

과학기술과 인권 이야기 (1)

범죄자 유전자 DB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 있다. 유전자 DB는 검경이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경쟁적으로 준비해온 사안으로 각 기관들은 흉악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제안하면서 여론의 추이를 살피고 있다. 처음엔 사회적으로 정당성을 쉽게 얻을 수 있는 성폭력범을 대상으로 한다고 했다고 여론이 좋아 보이니까 이제는 폭력이나 사기 같은 범죄까지도 원래 대상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얼핏 듣기에는 강간, 폭력범죄를 예방하고 검거율을 높이기 위한 획기적인 뉴스일지 모른다. 그러나 범죄자 검거가 용이해진다는 점을 들어 이를 환영하기 전에 생각해봐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범죄자 유전자 DB는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범죄자뿐만 아니라 용의자, 피해자, 현장 수거물을 대상으로 DNA를 채취해 이 중 각 개인마다 고유한 부위를 분석해 저장해 두는 것을 말한다. 저장된 정보는 범죄 현장에서 수거돼 분석된 DNA정보와 비교해 범인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쓰이게 된다. 범죄예방을 위한 이러한 획기적인 신기술에 대체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일까? 먼저 유전자 DB 설립은 상당히 많은 범죄자, 용의자들에 대한 (반)강제적 DNA 채취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재범률이 높다는 이유를 들어 이미 죄 값을 치른 범죄자들의 DNA를 국가가 강제로 채취해 보관하는 것은 범죄의 재발을 전제하는 것으로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자기 '신체 일부'를 강제적으로 침해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범죄자들의 인권만을 중시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DB가 구축되고 나면 감식 기술의 활용도 크게 증가 하는데 이 과정에서 용의자들이나 일반 시민들에 대한 반강제적 DNA 제출 요구들이 증가하게 된다.

인권침해 논란 못지않게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DB의 확장가능성이다. 유전자 DB는 일단 설립되고 나면 그 속성상 수집 대상의 범위가 확대되거나 다른 정보은행과 연동되는 경향을 보이게 마련이어서 문제는 더욱 커진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처음에는 대부분 정보은행 설립의 이유를 쉽게 정당화할 수 있는 살인이나 강간범 같은 흉악범의 정보를 저장하지만 나중엔 사소한 절도나 사기범에 대해서까지 그 대상이 확대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국내 상황도 비슷한데 언뜻 보기엔 강간범 같은 일부 범죄자만 포함될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만 입력해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그리고 구축된 유전자 DB는 다른 신상정보나 신원확인 유전자 DB들과 연동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국가가 소유한 다양한 개인 정보들이 연동, 통합되는 것처럼, 범죄자 유전자 DB의 경우도 머지않아 미아, 이산가족, 군대와 같은 각종 신원확인 유전자 DB와 연동돼 행정적 목적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

유전정보의 오남용 문제도 제기될 수 있는데 일부 인사들은 유전자 감식에 사용하는 DNA 부위와 질병정보를 얻을 수 있는 DNA 부위는 달라서 프라이버시 침해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원확인에 사용되는 DNA 부위와 다른 정보의 분석에 이용되는 DNA부위가 서로 완전히 분리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분석위치만 다를 뿐 마음만 먹으면 수거된 DNA에서 다양한 정보들을 추출할 수 있다. 예컨대 DNA는 한권의 책과 같아서 5쪽에서 신원확인 정보를 10쪽에서는 질병정보를 뽑아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유전정보 오남용 문제는 그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범죄자의 유전자를 연구용으로 쓰는 미국의 일부 주와 같은 극단적 경우도 있지만 작년 여름 조선족들에 대한 유전자 채취처럼 구체적 근거도 없이 개인의 유전정보를 수집하는 것 그 자체가 오남용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우려를 제기하면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미국과 영국과 같은 주요 선진국들이 이미 범죄자 DB를 설립해 '별 탈 없이' 운영하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들과 우리의 상황을 단순 비교해 정보은행의 긍정적 측면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는 전국민 주민등록번호제도와 지문날인제도를 전산화된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전 세계적으로 흔치 않는 강력한 국가감시체계를 갖춘 나라이기 때문이다. 신원확인 유전자 DB 설립문제는 '유전자'와 '과학수사'가 풍기고 있는 과장되고 신비화된 이미지에서 한 발짝 물러나 냉정하게 따져볼 사안이다.
덧붙임

김병수 님은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운영위원입니다.